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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풍경들'에 해당되는 글 68건

  1. 2014.03.24 빈센트 반 고흐를 찾다. 2편- 삶의 흔적을 찾아서 2
  2. 2014.03.23 베르사유 궁전뜰에 있는 조각상을 소개합니다.
  3. 2014.03.23 파리를 가슴에 꼭 품어 안았다.그녀의 가슴처럼 따듯하고 포근하다.
  4. 2014.03.22 빈센트 반 고흐를 찾다. 1편-오베르 쉬르 우와즈에서 그를 만나다.
  5. 2014.03.22 몽수리를 간다.내 뺨을 스쳐가는 바람..., 아직도 난 그사람의 그리운 연인으로 살고 있다.
  6. 2014.03.21 나폴레옹을 엘바섬으로 보내던 이별의 광장에 서다.
  7. 2014.03.21 피흘림을 기억하는 콩코르드 광장의 외침이 들리는가!!! 3
  8. 2014.03.21 나는 오늘 세기의 지성 사르트르와 보부와르 그리고 나의 시성 보들레르를 만났다. 2
  9. 2014.03.21 노트르담의 하늘과 만나다. (포앵제로) 2
  10. 2014.03.20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는 설레임을 계획하다.(파리-혼플레르-몽생미셸-생말로) 10
  11. 2014.02.18 파리의 아침 이야기 4
  12. 2014.02.06 내가 너로 살아도 2
  13. 2014.01.28 몽마르뜨 언덕에 올라 파리를 내려다 본다. 4
  14. 2013.12.12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으로 변하는 트랜스포머 ^^* 파리시청
  15. 2013.12.03 인연이란 그리움의 운명적 만남이거니와 준비된 행운이다. 7
  16. 2013.11.05 천불천탑 3
  17. 2013.11.05 가을 바람같은 쏘 공원(Parc de sceaux)을 다녀오다. 2
  18. 2013.09.02 가을의 낙엽이 질 무렵, 고흐가 70일을 살다가 80여점의 작품을 완성한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 Sur Oise)를 가다. 7
  19. 2013.09.02 새벽 안개에 쌓인 아름다운 샹티이성을 가다. 2
  20. 2013.09.02 호아요몽(루아요몽)수도원을 다녀오다.(Abbaye de Royaumont) 2
  21. 2013.08.24 파리의 멋진 야경을 만나 내 그리운 추억과 재회하다. 2
  22. 2013.08.20 하늘을 벗삼아 카메라 하나 달랑들고 마실가듯 나선 하루동안의 파리 여행기 4
  23. 2013.08.20 퐁네프 연인들의 퐁네프 다리를 가다.(Pont Neuf) 2
  24. 2013.08.20 밀레가 살았던 만종의 밀밭이 있는 바르비종을 다녀오다. 4
  25. 2013.08.20 퐁텐블로 궁전을 가다.(Château de Fontainebleau) 4
  26. 2013.07.17 -프랑스 7월14일 불꽃 축제- 2
  27. 2013.07.11 파리시내를 가면서..., 5
  28. 2013.07.10 몽수리공원(시테유니버시테 맞은편) 4
  29. 2013.07.10 오토리브(Autolib: 오토(Auto) + 자유(Libert’e)의 합성어)
  30. 2013.07.10 파리에서 자전거로 여행하기(파리의 무인 자전거대여 시스템 "벨리브"(Velib))

 

고흐가 생전에 그림으로 남기고  예배를 드리던 오베르 쉬르 교회를 지나 빈센트 반 고흐 묘지를 찾아 가는 길이다.

 

 

 

오베르 성당을 왼쪽에 끼고 돌아 올라가는 길이다.

고흐 생전에 그는 얼마나 많이 이 길을  올랐을까? 



이 길을 올라서면 밀밭이 보이고 저 넘어 오베르 교회 묘지가 보인다. 그가 70여일 머물면 80여편의 그림을 그렸던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이 보인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언덕을 넘어서 멀리 바라보이는 풍경 이곳에서 그는 까마귀 나는 밀밭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열정과정열의 빈센트 반 고흐

1890.7.27 리볼베 권총을 가슴에 발사함.

 

29일 세상을 떠남. 

 

6개월 후 동생 테오는 1891년 1월25일 죽음.

 

두 형제는 오베르의 같은 공동묘지에 나란히 잠듬. 

 

 

 

(고흐 자살 당시엔 생명을 잃을 정도의 중상은 아니었다고 함. 따라서 그의 죽음은 미스터리로 남아있음)

 

 

 

 

 

 

 

 

 

 

아직도 우리는 그를 기억한다.

 

누군가 그를 기리며 놓고 간 장미가 그의 묘비명에 놓여있다.

 

 

 

 

 

 

 

 

 

 

묘지 뒤 벽에 세워진 십자가 

 

사람들의 죽음뒤로 더욱 더 가치를 발하는 십자가

 

 

 

생전에 품지 못하던 십자가를 품고 가는 우리는 십자가 인생일지도...,

 

 

 

 

 

 

 

 

 

 

묘지에서 바라본 오베르 성당이 저만치 눈에 보인다.

 

철조망이 가로막혀 있지만

 

 

 

 

우리의  삶과 죽음에 경계는 없다.

 

 

 

 

 

 

 

 

 

 

군가의 묘비 앞에 놓인 마른 장미 한송이

 

화려했던 그의 삶이 장미 같았겠지...,

 

 

 

열심히 사랑했고 마음 놓아 울었으며  누군가의 기억에 영원히 잠들지 않는 꽃이 되었으리라

 

 

 

 

 

 

 

 

 

 

울림이 있는 글 하나가 삶을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우리 삶을 풀어쓰면 모든게 ㅅ ㅏ ㄹ ㅏ ㅁ 입니다.

 

 

 

가슴 아픈 사연 하나가 여기에 하트의 묘비명에 고스란히 천사의 모습으로 누워 있습니다.

 

 

 

 

"여기 다니엘 콘스탄드 로마루가 잠들다.부모의 슬픔속에 1909년 2월 15일 6개월만에 세상을 떠나다."

 

"사랑하는 작은 천사여,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렴"

 

 

 

 

 

 

 

 

 

 

 

사람은 누구나 잠들면 십자가를 가슴에 품고 산다.

 

 

 

 

 

 

 

 

 

 

 

 

고흐 묘지를 방문하다가

 

누군가의 묘지에 놓인 눈이 슬픈 강아지를 발견했다.

 

 

 

얼마나 사랑했으며 저렇게 그 자리에서 눈물같은  흔적이 되어 있을까?

 

비에 젖고,눈에 얼면서두 일년을 한자리에서 그를 여전히 안아주고 있는 너

 

 

 

 

너의 애잔한 콧등에 내 가슴에서 눈물이 나고

 

너의 슬픈 눈동자는 내 심장에 한줄기 시린 가슴으로 다가오는 빛이된다.

 

 

 

 

 

 

 

 

 

 

 

 

사랑하는 이여!  난 너를 아직도 기억하며,너의 흔적같은 내가 너와 함께 한다.

 

 

 

 

주인의 차가운 대리석을 끌어안고 있는 너, 너의 삶에 축복있으리라!

 

 

 

 

 

 

 

 

 

 

 

고흐 묘지를 나오니 황량한 바람이 불면서 들판에 밀밭에 싹이 돋고 있음을 알았다.

 

 

 

 

 

역시 남은 우리들의 삶은  ㅅ ㅏ ㄹ ㅏ ㅁ 이다.

 

 

 

 

 

 

 

 

 

 

 

 

묘지를 나오면서  보이는 벤치를 보니...,

 

 

 

죽음은 우리의 끝나지 않은 또 다른 삶이고  쉬어가는 인생길 같다는 생각을 했다

 

 

 

 

 

 

 

"빈센트 반고흐를 찾다."다음 제3편- 감성으로 가는 여행를 기대하세요!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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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오는 소식은 꽃으로 부터오고,


나는 그리움으로부터 온다.







베르사유 궁전뜰에 있는 조각상을 소개합니다.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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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가슴에 꼭 품어 안았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에펠탑



로댕박물관을 가면 한번도 만난적이 없고 본적이 없는 카미유 클로델이 생각난다. 


그녀가 너무 보고싶고 그 사랑이 그립다.




오늘은 에펠탑에 올라 서서 구름 아래, 내 발 아래 놓은 파리를 내려다 본다.








내 가슴에 품은 여자처럼 센느강이 너무 아름답다.









저 다리 위를 함께 걸었던 그녀가 이제는 파리 곳곳에 남아있다.






 



집에서 가까운 몽파르나스 타워가 보인다.에펠보다 더 높은 건물이다.










내 아름다운 그녀,파리를 내려다 본다. 내 아래에 그녀가 해맑게 웃으며 나의 눈을 맞추고 있는듯하다.










눈부시게 청조한 내 여자 마드모아젤 센느를 불러 본다.그리고 그 위에 아름다운 추억을 이어 주는 수많은 다리들  










파리를 아름답게하는것은 에펠이 아니고 센느가 아니고 무수하게 다양한 사람과 건물들이다.











눈을 들어 바라보는 곳마다  옛사랑의 흔적이 그리움 되어 남는다.

사랑과 아픔과 행복과 헤어짐 가운데서도 변치않고 수백년을 지내온 이 아름다운 건물들은 헤여짐의 반복을 보았으리라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아름답게 때로는 슬프게 저마다의 인생을 살아갈까...,











센느강을 지나는 유람선을 타고  파리가 지나간다.다리를 통과하며 수많은 사랑과 이별들을 다시 만들어간다.










센느강을 따라 오늘을 걷고 있다. 

어깨에 맨 카메라 ,호주머니에 가득한 그리움을 담아서 걷고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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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표적인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를 만나러 오베르 쉬르 우와즈에 간다.



사실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의 Zundert에서 출생했으며,1890년 7월 29일 이곳 Auvers-sur-Oise에서 사망했으며 오늘 찾아가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 sur Oise)는 그가 권총으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약 70여일을 살았던 곳으로 그의 삶 중에 의미가 깊은곳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램브란트이후로 가장 뛰어난 네덜란드 화가로 손꼽히며,세느, 고갱과 더불어 네덜란드의 화가이자 드로잉맨으로 가장 뛰어난 후기 인상파 화가이다. 그는 이곳에서 80여점의 귀한 작품을 남겼다.




<고흐의 작품 L’eglise d’Auvers-Sur-Oise를 그린 실제의 교회이다.>








오르세 미술관에서도 다른 곳에 절대 빌려주지 않는 작품 중 하나이다. 




<작품 L’eglise d’Auvers-Sur-Oise>






간략히 그의 삶을 들어다 본다.아버지는 신교도의 목사였고, 고흐는 성직자로서 교육받았으며, 1878년 그의 학업을 버리고 예비 목사로서 일하기 위해 벨기에 있는 the grim Borinage 주의 가난한 갱부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는 Borinage에 남았고, 가난과 정신적 병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그는 자신의 세계를 포기했고, 그의 학업을 포기했던 정열과 열정의 사람..., 빈센트 반 고흐.





그가 그림이라는 예술의 세계을 발견했을 때 그것은 일종의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것의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그의 이러한 뜨거운 혼자만의 열정으로 그는 새로운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그것은 그에게 비참한 가난, 영양 실조등으로 고통받게 했으며, 이러한 불굴의 열정이 그의 삶 10년 중에 약 800개의 그림과 데생 작품을 그리게 했는지 모르겠다. 그는 그림을 전혀 팔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했으며, 환각증세 그리고 신경성의 질환으로 고생했다. 



Arles에서 그는 고갱을 만났으며 그러나 그 둘의 싸움의 결과로 그 유명한 사건인 고흐가 자신의 왼쪽 귀를 자름으로 인해 그는 더욱 고통받게 된다. 1889년 5월 그는 자신의 요구에 따라 Arles 가까운 St Ray의 정신요양소로 갔다.  



그리고 생의 마감을 예감한듯 그는 그곳에서 StarryNight라는 세계적인 그림과 150개의 데생을 만들었습니다.







<그가 죽기 직전까지 머물던  Auvers-Sur-Oise에 있는 라부 여인숙>










<두사람이 있는 오베르의 거리와 계단이라는 작품의 배경이 된 곳> 









그는 살아서 오직 한개의 작품을 팔았으며,그래서 그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그의 예술 세계는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도비그니 미술관/관광 정보 센터>










<열정과 정열의 사나이 빈센트 반 고흐/러시아 조각가 자드킨의 작품/조각에서도 그가 얼마나 가난했는지를 엿볼수 있다.>







1890년 7월 29일 그는 권총으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삶의 마지막 70일동안 70개의 유화작품을 남긴 Auvers-Sur-Oise의 그가 머물던 여인숙 레스토랑 들어가는 길 지금은 그의 머물던 숙소가 관광객을 맞이한다.






<고흐가 머물던 방과 침대를 구경할수 있다.시청각자료실과 선물코너 그리고 고흐의 방이 있다.>









<고흐 동생이자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드르 반 고호와 빈센트 반고흐가  묻힌 무덤 올라가는 길 >









<언제나 함께 하길 원하던 두형제의 무덤 /그의 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묘지>








<동생 테오드르 반 고흐 묘지/ 일년 뒤에 형을 따라간 동생>









이곳은 Auvers-sur-Oise는19세기 유명화가들인 세잔,도비니,파시로등도 사랑했던 마을이다.



<오베르쉬르 우아즈 시청 건물>


 


"빈센트 반 고흐를 찾다" 2편,3편,4편으로 나누어 올려 드리겠습니다.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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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을 맞고 걷는다는것은  옛날에는 도선생을 두고 한말이다.
현대의 이슬을 맞고 걷는다는 것은 부지런함과 사색의 즐거움을 맛보는 사람들을 말한다.


1주일 7일=168시간=10,080분=604,800초
일주일,이렇게 많은 시간중에서 사색하는 시간이 없다면 인생은 정말 무의미 할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사색하는 일이다.
그리움은 나와 그 사람 혹은 그 어떤것을 위하는 일이지만,사색이란 오로지 나만을 위한 일이다.









그런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책상에 앉아있거나..., 
공원을 가거나 해야한다.


여러 방법 중 어떠한 방법을 갖는냐는 사색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멋진 숲과 사람들과 호수와 공원이 있다면 어떨까...,


내가 가진 시간 중 일부를 그 곳에서 사용한다면 행복감으로 가는 시간이 아쉽지 않을듯 싶다.










집 근처에서 가까운 공원엘 간다.그 공원의 이름은 몽수리이다.
그곳에 가면 한아름이 넘는 나무들과 지저귀는 새들의 합창과 마주보는 시테 유니버시테 기숙사의 젊음을 나눌수가 있다.


동화속 풍경같은 구불구불한 산책로 그리고 팔뚝만한 잉어와 오리가 거닐듯 살고 있는 커다란 호수,

가냘프게 피어난 바람속의 꽃 나의 열정을 닮은 나의 아름다운 연인...,빨간색 고꼬디아 꽃..., 









몽수리공원(Parc Montsouris)sms 1853부터 30년간 대대적인 파리 개조사업을 벌여 지금의 파리가 된것이다.

그전에는 비가오면 진흙투성의 수렁이 생기고 전염병이 창궐하는 지저분한 도시였다고 한다.



19세기 중반 이후 오스만은 파리 개조사업시에 사용할 돌이 필요했다.그래서 이곳 몽수리의 돌을 채석해서 파리의 수많은 도로와 집을 지었고,그때에 돌을 파낸 자리는 황량하게 큰 구덩이로 남게 되었다.



그 황량한 터에 공원이 생기게 되었고,그 이름이 바로 몽수리이다.





< 몽수리 공원 들어가는 입구 빨간 까페에 당신과 함께 나누는 커피가 그립다>









파리 동서남북으로 녹지를 계획하였던 오스만은 그결과 뱅쎈숲과 블로뉴숲,몽수리공원,뷔트쇼몽공원을 만들었다.

사실 몽수리와 뷔트쇼몽은 프랑스식이 아닌 영국식 조경이다.



쉽게 말한다면 프랑스의 도로 건설은 4면의 무수한 직각들로 도시를 계획했다.

그런 직선의 길 가운데 지어진 공원내 산책로는 모두다 꼬불꼬불하게 자연의 그대로를 살려 곡선으로 조성했다는 말이다.





<사랑을 나누는 한쌍의 하트 모가지를 한 아름다운 연인>








그래서 몽수리하면 화가 앙리 루소를 말한다.그는 이런 풍경에 반해 이곳 그림을 자주 그렸다고 한다.

그의 대표적인 몽수리 공원의 산책의 주제는 나무이다.이곳에는 젊음과 황혼이 공존하는 세계이다.



몽수리 공원이 위치한 곳에 시테 유니버시테라는 세계의 대학생들을 위한 기숙사가 있다.

일요일이면 내 발길을 옮기게 하는 곳....,




<몽수리에서 바라본 시테유니버시테 세계 대학생 기숙사>







내 뺨을 스쳐가는 바람....,

머리를 조금 길었다면 더 좋을 바람과의 춤을 추는 흩트러짐,


그리고 아름다운 곳의 새소리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헤드폰에서 흘러나온다면...,

난 오래 전 그 모습 그대로가 좋은  젊음의 연인으로 되돌아가고만 싶다.





가슴에 그리운 사람을 꺼내 바람에 햇볕에 내놓고 세상속에서 혼자만의 사랑으로 그리워도하고,

오염된 내 사상을 씻어내고 부는 바람에 입맞추고, 그렇게 그립고 아름다운 사연과 생각을 그곳 벤치에 두고 돌아온다...,




<나의 쉼터,이 벤치에 두고온 많은 그리운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 안부가 묻고 싶다>









나의 돌아갈수 없는 젊음과 나의 아름다운 연인들의 그리움들을 모아서 나는 한걸음 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처럼...,



그 책을 다시 읽고 같은 감동으로 가슴이 젖는다면...,

한잔의 차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캐서린(캐디)는 아닐지라도...,마땅히 나는 그때로 다시 돌아가리라...,




<내가 사색하며 글을 쓰기를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 오늘도 그리운 사연을 적어본다.>









<시테유니버시테 기숙사 입구>










<시테유니버시테 관리 본관-도서관 관리 사무실 공연장 연주실 회의실등이 있다.>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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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 슈발의 퐁텐블로(Fontainebleau)


파리의 남동쪽 65킬로에 위치한 베르사이유 궁의 모델격이 절대 원조..., 퐁텐블로를 간다.


프랑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중세 카페 왕조에서부터 나폴레옹 3세에 이르는 역대왕들의 진솔한 삶이 숨쉬는 은밀한 은신처.


정치를 떠나 애첩들과의 은밀한 밀애를 누르는 정말 은신처...,


페리 슈발이란

말발굽 모양의 독툭한 성을 들어가기 위한 계단의 모양을 따서 그리 이름 지었다.

우아하고 세련되고,그래서 일까..., 로맨스의 영화 속에 등장하기도 한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2만 5000핵타르의 넓은 숲,사실 성의 앞마당이지만...,


사실 이 성은 짬뽕이다.

12-15세기에 걸쳐 지어짐으로 인해 다양한 건축 양식이 Mixed 되어서 딱히 어느 양식이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지금 이 성의 모습은 프랑수아 1세때 완성됨으로 인해 그의 이름 첫글자를 따서 건물 외관에 F가 상징적으로 새겨져 있는 르네상스 풍의 건물이다.


미리 알고 떡하니, F로 찜을 한  덕에 정권이 바꿔어도 개조없이 성을 지킬수 있었다고 한다.

나폴레옹 1세가 가장 사랑한 성이기도 하다.






백마의 안뜰에서 바라본 페리슈발(Escalier du Fer-a-Cheval)


























성을 둘러본 후에 산책하기 좋은 사냥터로 쓰인 성의 앞마당 격인 숲을 가보는것도 좋다.

하지만 겁나게 다리가 아플꺼라는것 그리고 돌아오려면 가끔 왜 이리 멀리 왔나 짜증이 날꺼라는것만 빼면 걍 좋다.











여친이나 남친이 있다면 그정도는 감수 할수 있으니,꼭 연인들이 가시길...,

동성끼리가면 오해받거나 말거나지만 그걸 떠나 같은 종족끼리는 재미가 없자나요ㅋㅋㅋㅋ




페리 슈발 계단은 앙리 2세때 장 앙드루에 뒤 세르소가 1634년 만들었으며 이 성 안에는 거대한 운하와 디안 정원이 있다.




(Jardin de Diane)

















아래 사진은 

나폴레옹이 엘바섬으로유배를 갈때에 근위병들을 새워 놓고 이별사를 고했던 일명"이별의 광장"입니다.






<백마의 안뜰이지요.나폴레옹을 마지막 기억하는 이별의 광장>









이곳 계단에서 백마의 뜰을 바라보자니...,

제가 나폴레옹이 된듯 합니다.유배가는것만 빼고 ㅋ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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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가볍게 가디건 하나를 걸치고,썬글라스에 모자를 눌러 쓰고  센느 강 바람을 만끽한다.

지도 한장과 커피값 정도의 약간의 돈 그리고 볼륨을 높인 나의 애마를 타고 센느 강변길을 달린다.



끈끈한 피가 나를 붙잡는 듯...,피하고 싶은 길에 들어섰다.

사실은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길이다.나의 사상을 닮아서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멀리서 가까운듯 에펠탑이 보이고,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알렉산드르 3세 다리가 보인다.

샹제리제와 루부르 박물관을 갈수 있으며,멀리 개선문과 라데팡스 신 개선문이 보인다.

오르세이 미술관을 지나면 노트르담이 보이겠지...,



이곳은 자동차가 지날 때에 드르륵 드르륵하고 소리를 낸다.

피흘림의 외침같은 소리이다. 



작은 진동으로 차도 몸도 떨리면서 내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피빛 작은 속삭임들이 전해져 온다.


싫지 않은 느낌으로 늘 편하게만 살다보니,안락한게 좋다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죽은 정신과 사상을 깨우고 있다. 




지금 내가 달리는 도로의 드르륵 거리는 소리는 한때 바스티유 감옥의 벽으로 사용된 돌이 도로에 깔린 소리이다.


자유와 평등을 억압하고 속박했던 감옥을 부수고 그곳의 벽,세상과 단절된 상징이 된 감옥의 벽을 쌓던 돌을 도로 바닥에 깔고서 그들은 아직까지도 그 정신을 계승하고,어쩌면 지금도 그들은 그 혁명정신으로 세상의 자유와 평등을 억압하는 모든 것들에 저항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자유와 평등을 얻기 위한 그들의 피흘림들...,


파리의 중심지인 샹젤리제와 르부르 박물관의 중간쯤에 혁명의 광장이 있다.

지금 말하는 이곳이 콩코르드 광장이다.(Place de la Concorde/콩코르드는 화합이라는 불어이다.)




지금 보시는 오벨리스크와 분수대가 서 있는 곳이 바로 프랑스 대 혁명시절 단두대가 서있던 피흘림의 역사의 현장이다.







혁명가이자 정치가이며 인권변호사이기도 했던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의 피흘림이 서린 곳이다.

혁명 중에 민중의 손에 의해 정치가가 된 그는 왕과 귀족을 끌어내어 처형하는 역사의 민중의 봉기 속에 함께 했다.



진보와 보수가 싸우는 격렬한 역사의 정치의 현장 속에 있던 그도 결국은 똑같은 방법으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갔다.

하지만 민중를 위한 민주를 위한 그의 이상이 고스란히 피로 물들었기에...,


역사는 루이 15세의 광장으로 불리던 이곳을 루이 16세 때 혁명의 광장으로 이름을 바뀌면서 왕은 이곳에서 처형을 당했으며,

결국 그의 목을 자른 로베스피에르도 이곳에서 똑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그래서 프랑스는 대혁명의 그 역사를 훗날, 아니 바로 지금 이곳을 화합을 뜻하는 콩코르드 광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바뀐 역사의 이름으로 왕족과 귀족을 몰아내고,무수한 보수와 진보의 피흘림을 쏟아내고는 나중에서야 결국 역사는 화합이란 이름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 했다.


이곳을 지나는 내 귀에 그들이 외치던 함성같은 피흘림의 소리가 드르륵 드르륵하고 들린다.

더욱 더 엑셀레이터를 밟아서 그 함성을 더욱 더 크게 하고 싶었다.














저멀리 개선문이 보인다..., 그 개선문 속으로 또 보이는 신 개선문이 보인다.

프랑스는 역사 위에 진실를 쓰던 피흘림을 소중하게 간직한 고귀함을 내세우고 자랑할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는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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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세기의 지성을 만났다.


돌아오는 길에 그들의 사랑함과 그들의 지성이 바람처럼 나를 따라 다녔다.



계약결혼'이라는 단어의 대명사

평생 연인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한때 부는 바람으로 빗나간 사랑이 되어 계약이 깨질뻔 했지만..,


영원히 결혼을 포기하고 평생을 연인으로 남아 사랑 하나로 끝까지 열애하다 간 바람처럼 자유하던 그들...,

결혼보다 더한 50년을 계약이라는 약속 아닌 약속을 평생 지키다 간 약속의 연인...,


오늘은 그냥 그렇게 그들이 그립다.

그들의 앞에서..., 

잠시 머물다...,


맑은 하늘에 눈물같은 비가 뚝뚝 떨어진다. 

아직도 내게 이런 눈물이 있었는가?


그들의 사랑으로 나의 가슴에 막힌 담이 허물어지듯이 그렇게 눈물이 난다.


차가운 그들의 묘비석에 붉은 입맞춤의 묘비명을 쓰고 간 사람들의 붉은 입술 자국들....,



왜 나를 아프게하는지...,

나의 온몸이 짜릿하며,머리카락이 쭈삣하고 솟는다.

밤이면 그들은 손을 잡고 이곳을 거닐고 있지는 않을까?...,








<몽파르나스 묘지의 입구에 세워진 묘지 배치도이다.>







나의 시적 감성을 준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인간의 영과 육의 이중성을 예리하게 파헤친 "악의 꽃"

퇴폐적인 미와 증오 그리고 인간적 고뇌,거룩한 미의 예찬,마음의 갈등,육체의 쾌락과 정신적 지옥을 다 껴안은 시인...,



그가 부르던 "블랙 비너스,여인 중의 여인"인 아이티 출신의 무용수 "잔 뒤발",그녀는 나의 보들레르에게 상상력의 샘이요,

폭풍같은 사랑으로 인해 악의 꽃으로 나타났다.




그는 나를 그에게서 한참 동안을  머물게 했다.무슨 말이라도 하려는듯이...,




<보들레르의 묘>







저 멀리 새까만 유리건물 몽파르나스 타워가 보인다.


세상과 묘지는 단절이 아니고,죽음과 태어남은 이질감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생명의 밑바닥은 죽음으로부터 시작되고,죽음은 또다른 만남으로 가는 아름다운 손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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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여행하기 위해...,

제일 먼저 노트르담 성당(Cathedrale Notre-Dame de Paris)으로 간다.


아름다운 노트르담 대 성당과 시테섬을 구경하기 위함도 있지만...,


사실 파리에서 여행의 시작과 모든 시작의 중심점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곳으로부터 세느강을 따라가면 오르세이-샹제리제-에펠탑을 갈수 있다.


실제로 이곳에서 부터 여행을 시작하여 세느강을 따라 모든 여행을 시작하는게 겹치지 않는 가장 좋은 여행이 된다는 것이다.




파리여행의 시작점이요 출발점,바로 포앵제로(POINT ZERO)이 이곳에 있다.

파리의 중심,바로 이곳이 다른 어떤 곳까지의 거리의 측정의 기준점이라는 말이다.


프랑스의 어느 곳에서든지 시작점이 되는 거리 측정의 제로(0),즉 모든 시작점이요,출발점이 바로 이곳이다. 






가로등과 노트르담 대성당이 아름다운 짝을 이룬다.








포앵 제로(Point Zero)

이곳을 밟으면 파리에 다시 올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 사랑하는 그 사람과 영원한 이별이 없이 사랑하고 싶다면 꼭 이곳을 밟아 보시라...,







노트르담 대성당 앞 광장에 모인 수많은 나라의 수많은 인파들...,

이들이 지금 이곳에 있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빅토르 위고(Victor Hugo) 때문이다.


파리 대혁명으로 크게 파손되어,사라질 위기에 처한 성당이 오늘날까지 이렇게 아름다운 파리의 시작점이 되는 것은,

그의 작품 "파리의 노트르담"이라는 소설 때문이다.


이 소설로 인해서 성당 복원의 지지 여론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예술가들은 존경받고,추앙받아 마땅하다.

자기의 열정을 세상을 위해 불사르지 않는가 말이다.



나의 사랑도 단 한사람에게 존경받고,추앙받고 싶다. 영원함으로 말이다.








850은 무엇일까?

아시는 분을 위해서 알려주지 말까...,

하지만 난 부드럽고,친절한 남자이다.ㅋ


2013-1163=850

1163년 초석을 세웠으니,850년이 되었다는 말이다.



완성되기까지의 시간은 얼마인지 아는가?


무려...,

초석을 놓고 170여 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프랑스가 대단하고 파리가 영원토록 사랑을 받는것은 오래된 역사와 예술을 지킬 줄 아는 힘 과 노력이다.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기괴한 석상들이 노트르담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의 보호 아래에 오늘 나는 노트르담을 가슴에 안고 돌아 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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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이면 몇번씩 출장길에 혹은 여행으로 파리를 찾는 친구나 지인들이 있어서 늦은 시간 자주 파리의 샤를드골 공항을 나간다.



그런데 아주 고약하게도 공항으로 가는 파리의 외곽 순환도로인 빼리빼리크는 구간 구간마다 최고 속도가 다르다 보니 듬성 등성하게 이어진 최고 속도 70-90 그리고 110킬로 구간의 빼리빼리크(Peripherique/)를 달리다 보면 매달 한 두건씩 과속 딱지가 날라온다.


물론 이 모든것은 누구를 탓하지 못할 과속하는 내 탓이리라.



조명의 나라...,

원자력으로 전기를 팡팡 만들어 대는 나라? 가 야간의 도로의 조명은 어찌나 어두운지 노안이 왔나 착각하며 눈을 비벼대고 달려야만 한다.(실제 노안일수도 있다 ㅋ)



프랑스는 밤에 도로의 조명이 한국처럼 밝지가 않다.

지방으로 나가는 고속도로나 지방 국도는 정말 한치 앞이 안 보일 때가 있다.


무인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긴 하지만 그리 많지는 않다.주로 이동식으로 빼리빼리크(Peripherique/ 파리의 외곽을 감싸는 파리의 심장같은 도로)를 지나는 다리 위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찍어대니...,



귀신 곡하게 정속으로만 달리던가...,

아니면 귀신 곡할 노릇이네 하며...,


카메라가 내 차에 달렸나 하고 위안을 받던가는 모두 나의 몫이다.


벌금 고지서를 받고 2주안에 (45유로)벌칙금을 안내면 두배,세배로 계속 베팅?ㅋ 이 된다.

진짜 강심장 배짱 아니면 안낼수가 없다.고금리 고리대금업자 같은 방법이다.



2002년 한국의 월드컵이 열리던 해 포드 몬데오 디젤을 샀다.

그리고 5년 뒤 그보다 작은 2007년 시트로앵 C4 Exclusive를 산지가 7년이 되었다.



파리에서는 차가 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았다.물론 호불호다.

큰차가 좋으면 큰것을 타는것이지만 나는 아내랑 같이 차를 쓸 요량으로 작은 차를 샀다.


작은 공간에 주차하기 쉽고,경제성 있고 두루두루 실용적으로 사는게 유럽 특히 프랑스 방식이다.


근데 문제는 아내는 지금까지 운전을 안한다는 것이다.


여자는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를 섬기고,결혼해서는 남편을 섬기고,나이가 들어서는 아들을 섬긴다나? ㅋ

내가 운전 안해주면 이제는 아이들을 시킬꺼란다.ㅋ 


아무튼...,ㅋ








아무튼 차를 가지고 다니는 것도 스트레스다.
언제 또 딱지가 날아올지 모르니까 말이다...,달리는게 겁나게 겁나는 드라이버이다.


그래서 4월 초에 질주 본능을 떨쳐버릴 왕복 1,000km(왕복 운전만 10시간)의 당일치기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그 여행의 코스가 프랑스에서 서부 해안에서 영국해협을 보며 달리는 
파리-혼플레르-몽생미셜-생말로(Paris-Honfleur-Mont saint michel-Saint malo)코스이다.



< 총각같은 사진-총각이 아니다는 말을 요로케 한다.ㅋ  >





아침 일찍 집에서 출발하여 혼플레르를 두시간에 찍고(점심)-몽생미셀을 보고-생말로를 가서(저녁)-돌아오는 길에 몽생미셀 야경을 보고 오면 파리에는 새벽 1-2시에 도착할수 있다.


물론 1박을 하면 좋겠지만..., 
미국에서 처럼 라스베가스 가기위해 하루 종일 운전하던 그때의 재미도 있어서 좋다.



어제는 90킬로 구간을 95킬로로 달렸다고 또 딱지가 날아왔다.
현관의 편지함을 열어보기가 겁이 난다.

그리고 귀에 쟁쟁한 여친의 "왜 맨날 자기만 찍혀?!"하는 소리에 놀라는 나를 보면서 맥없이 엘리베이터를 내렸다.



프랑스는 모든 것에서 여유있는 그들에게도 생명을 지키는 것에는 양보와 여유가 없다.

정해진 규정속도에서 1킬로만 넘어도 과속이다.
딱지 떼여서 화가 나지만 그래도 이게 제대로 된 원칙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나라도 네비가 있다.하지만 네비가 규정속도는 알려주어도 과속 카메라가 있다고 위치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이렇게 이 나라는 한국과 다른 것이 많다.나는 이것을 두나라간의 문화의 차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누가 국민을 더 위하는 행정인지는 생명을 지키는 행정인지는 말안해도 아는것 아닌가...,




< 편도  약 460km의 전체 구간 >






< 약 200킬로/2시간 30분 이상의 파리-혼플레르 구간>






< 약 260킬로/2시간30분 정도의 혼플레르-몽생미셸 구간>






< 약 60킬로/1시간 정도의 몽생미셸-생말로구간>




왕복으로는 총 대략 900km정도의 빠틋한 당일치기 여행/멋진 사진은 차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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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아침 이야기



1.

나는 오늘도 푸른 하늘과 만난다.


나에게 아침은 언제나 그리운 꿈을 꾸는 사람으로 살게 한다.









2.

푸른 하늘과 만난다는 것은 


푸른 가슴으로 열어 놓은 내 작은 창을 통해 손짓하나 몸짓하나로 그 사람을 그리는 것이다. 









3.

그리운 아침에 푸른 하늘은 바라본다는 것은 


들리지 않는 작은 속삭임으로 그리운 사람에게 다가가는 가슴 설레임을 노래하는 이다.









4.

내가 만나는 푸른 아침이 시리도록 파란것은 


울지 못하는 내 가슴에 작은 햇살하나 그리움하나 가득 담아보내는 내 사람의 선물같은 것이다.









5.

그리울 때 그리워 할것을...,


아직도 다 그리워하지 못했는데...,


이제 가슴에 남은 그리움마저 보내야 한다면 나는 앉아 울기보다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그 사람 이름을 부르고 싶다.










6.

너를 사랑해서 내 가슴은 늘 푸르렀고


너를 그리워했기에 내 두 눈에 푸른 하늘을 담고 살수 있었다.하지만 이제는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그저 바라만 볼수가 없구 나

 

나는 아직도 보내지 못한 너의 그리움에 푸른 눈물로 하늘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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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기억 속에 잊고싶은 사람이 있으며,잊혀지지 않는 영원한 사람도 있습니다.

과연 나는 누군가에게 잊고 싶은 사람인가? 
잊혀지지 않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할수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를 판단하는 누군가의 마음에 따라 결정되는것이라 생각한다면,이미 당신은 누군가에게 잊혀진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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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길지않은 짧은 세상을 살면서 누군가에게 늘 기억되는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것은 분명히 어려운 일입니다.

이렇게 험한 세상을 살면서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겨진다는 것은 나에게는 축복이요.누군가에게는 기쁨이 되는 일인 것입니다.

스스로 먼저 자신에게 좋은 사람인지 물어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분명히 잊혀지지 않는 영원한 한사람일것입니다.



나에게도 오래전에 이미 잊어버린 사람이 있고,지금 이 순간 잊어버리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게 오랫동안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잊혀지지 않는 한사람이 있습니다.

그 한사람..., 
오늘이라는 시간속에 나와 함께 하는 바로 당신이라는 사람입니다.



당신이나 나에게 잊혀지지 않고 기억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리 좋은것이 아닙니다.
내게 잊혀지지 않고 기억되는 사람은 단 한사람이면 족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잊혀지지 않는 단 한 사람이 되고,당신이 내게 잊혀지지 않는 단 한 사람이면 됩니다.



오늘도 나는 당신을 잊혀지지 않는 기억에 붙잡아 두고 싶습니다.
살다보니 너무나 쉽게 와서는 너무나 쉽게 떠나는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당신은 떠나지 않았는데도 이미 보내버린 사람이 되지 않기를,
잊혀지기도 전에 잊어버린 사람이 되지 말기를..., 

간절하게 용서를 구하듯 바래보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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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다보면 
나중에는 결국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게 세상의 이치입니다.


부디 당신은 오랫동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나는 마지막까지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당신에게 나는 잊혀지지 않는 어떤 의미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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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뜨 언덕에 올라 파리를 내려다 본다.

새벽닭은 울지 않았지만
동이트는 아침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바라보던 에펠탑이 눈에 가득하다.


이제는 언덕을 내려가야만 한다
 


저멀리 보이는 에펠탑은 
새벽이 눈을 뜰때마다
가슴으로 만나는 그리움이 되겠지


오른다는 것은 
더 높이 바라보기 위함이 아니고 
더 멀리 바라보기 위함이 아니던가?!







세상의 이치는
오르면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잘 오르는것 만큼이나 
잘 내려가는게 더 중요한 까닭이다.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잘 내려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떤이는 
처음 오를때와 달리 배가 불러 못 내려갔으며,


다른 어떤이는 
처음 마음을 잃고서 자만하다 굴러 떨어졌으며,


또 다른 어떤이는 
내려가지 않으려다가 결국 밀려서 떨어졌으니,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오르고서 내려가지 않은 자는 없었다.


가장 멋지게 내려가는 방법이 하나 있다.

무겁게 지고 올라간 것들을 모두 다 내려 놓고서 빈 몸으로 내려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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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시청
[오텔 드 빌 드 파리(Hôtel de ville de Paris)]

파리시청을 다녀왔다.
어느새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이제 마지막 남은 한달이 채 얼마 남지도 않았다.

한겨울 내내 파리의 하늘은 온통 회색 물감이 칠해지고,하늘에서 내리는 가랑비와 차가운 바람으로 파리는 꽁꽁 얼겠지...,


하지만 가슴에는 따스한 감성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파리시청 앞 광장은 이제 곧 스케이트장으로 변신을 한다.여름에는 파리플라쥬(파리에 머무는 사람들을 위한 해변으로 변신)로 사용하기 위해 시청앞 도로 광장을 모래 백사장으로 만들고,겨울이면 스케이트장으로 사용된다.

 

 

 

이곳 파리 시청은 1357년부터 파리 시청으로 프랑스 수도 파리의 행정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

16세기와 19세기에 네오 르네상스 스타일로 건축 양식이 보수 되었지만,파리 코뮌 당시 화재로 전소 되었다.지금의 건물은 당시의 모습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내부는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데,르네상스 스타일과 벨 에포크(Belle Epoque) 스타일 위주로 꾸며져 있다. 

화가 퓌비 드 샤반(Puvis de Chavannes)의 작품이 눈에 띈다.

파리 시청은 무료로 개방되며 일반인 관람이 가능한 상시 전시를 위한 공간도 마련하고 있다.


사실 파리 시청은 5세기라는 긴세월에 걸쳐 사형 집행장으로 사용되었으며,오랜기간 시청 앞 광장은 시위와 혁명의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중세때부터 임금인상을 주장하는 노동자들이 모여 들던 이곳 명칭이(Place de la greve) 오죽했으면 나중에는 파업(Greve)이라는 고유명사가 되어버렸을까...,

아무튼 현재 사진으로 보는 웅장한 건물이 영광과 오욕의 역사를 지닌 오텔 드 빌(Hotel de Ville/시청)이다.
여름에는 파리 플라쥬(파리 해변),겨울에는 스케이트 장과 같은 시민들을 위한 여가와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현재 지금은 파리시민들을 위한 다양한 도시 행사를 위해 사용되고 있으니 얼마나 시대적 아이러니인가...,




 

사진에 보이는 2층의 조각상은 역대 파리 시장들의 조각상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왕권을 제한하고 삼부회의 힘을 강화함으로 파리 자치를 시도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다름아닌 에티엔 마르셀이다. 

그는 1358년 파리상인 협회장이였고,당시 자크리(농민)반란을 동조함으로 파리시민들을 봉기하게 만든 이유가 되었다.그러나 그는 자크리 반란이 진압되자 시민들의 지지도를 잃게되었고,결국 그의 시민들에 의해 1358년 7월 살해되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항상 아까운 인물들은 항상 시대를 잘못 타고난다.시대가 영웅을 만들지 영웅이 시대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런지...,

아마 그도 당시로 부터 약 400여년 후에 태어났다면 충분히 시민혁명가로 이름을 날렸을것이다.하지만 현재는 많은 역사학자들이 그의 업적을 재조명하고 있다고 한다.

에티엔 마르셀의 유명한 말이 있다.
"나의 자리는 선량한 시민,선량한 노동자,선량한 농민의 곁에 있다.그들이없으면 우리는 생존하지 못할것이다."



<사진 설명>

-첫번째 사진 왼쪽 돔형 지붕이 있는 건물은 BHV(Bazar de l'hotel de ville)로써 가정용품 백화점이다.마레(Marais)라고도 한다.사진 앞 횡단보도가 있는 도로가 여름에는 백사장 그리고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변한다.



 

 

-두번째 사진은 퐁피두 센터의 카페골목으로써 아틀리에와 전시장들이 모여 있는 곳의 벽면 그림이다.

 

 

-마지막 사진은 유명한 현대 건축물을 상징하는 퐁피두센터의 광장에서 햇볕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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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은 모두들 되돌아간다.


인생은 내가 처음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만났던 바람과 햇살과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인생에 바람불지 않는 날이 없었고,해가 뜨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바람이 불면 흔들렸고,햇살이 비추면 따스했다.



그렇게 만나는것들로 우리들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그게 인생이다...,




산에 오르면서

우리는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과 만났고,



개울을 건너면서 

우리는 흐르는 물과 돌이 만나는 소리를 들었다.


인생은 그렇게 오르고 건너면서 만나는 기억들을 곱게 곱게 쌓아가는 일 인것이다.






파란 하늘이 어느새 붉게 노을이 지고,푸르던 풀과 나무가 붉게 단풍이 질때면,

어둠은 짙어오고 우리는 늘 집에 가는 길 위에 서 있었다.


인생은 그렇게 달라져 보이는 수많은 시간의 색들을 입히는 일 인것이다.






(2)


이제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 하늘을 바라본다.





어느날인가 하늘이 내는 바람 소리가 슬프게 우리를 찾아온다면,



비로소 그때 우리는 잠긴 빗장을 열고 하늘을 마음껏 날으는 한마리 새가 되어 바람처럼 가볍고 

영혼처럼 자유로운 먼 여행을 떠나게 되겠지...,



인연이란 

수천 광년,수천억 갈래로 나누어진 전혀 헤아릴수도 없는 다른 시간과 공간의 빛이 

그 넓은 우주를 뛰어넘어서 "너와 나"라는 서로의 이름을 버리고 

"우리"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아름다운 만남을 갖게 된것을 말한다.




운명이란 

산과 들판에 활짝 핀 셀수도 없는 무수한 꽃 하나가 

산과 들판을 지나는 무수한 벌들 중 한마리 벌을 만나는 행운을 말한다.







이렇듯 우리 인생의 시작은 태어남이 아니고 만남이며, 헤어짐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


세상에 좋은 인연,나쁜 인연이 어디 있던가!?

세상에 태어난 것 만으로도 이미 좋은것을...,



누군가 만나는 것 만으로도 이미 인연이요, 운명이요, 행운인것을...,

너를 만나는 것 만으로도 이미 나는 충분히 행복한것을...,






인연이란 그리움의 운명적 만남이거니와 준비된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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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천탑

여행지&풍경들 2013. 11. 5. 22:48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 화순의 운주사(雲住寺)는 천불천탑(千佛千塔)으로 유명한 불상과 탑의 사찰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불상과 탑이 천 개씩 있다고 해서 천불천탑이라 하였다는데 사실 현재 그 수는 그렇지 않다.















운주사는 탑과 불상이 타 사찰에 비해 많은 것이 특징이지만 그 생김새 또한 다른 사찰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운주사의 탑과 불상은 공들여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힘들 정도로 자연스럽고, 편한 얼굴 혹은 장난기 어린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운주사를 대표하는 불상은 산 언덕 위에 있는 바위에다 부처를 새긴 누워 있는 와불이라 할 수 있는데,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이 와불이 일어나는 날 세상이 다시 열린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이런 전설은 백제시대에 전해지던 하생미륵의 전설과 비슷하여 운주사가 과거 낮은 신분의 사람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운주사에는 수많은 불탑과 불상들이 사찰 주변 곳곳에 아무렇게 아무런 모양을 하고 세워져 있었다. 특히 내가 처음으로 본것은 둥근 원형 석탑을 처음 보았다는 것이다.














현재의 이곳 사찰은 임진왜란 때 폐산된 절을, 1918년에 중건된 것이다.1942년에는 석불 213좌와 석탑 30기가 있었다고 한다.그러나 현재는 석불 70좌와 석탑 12기만 남아있다.










정확히 언제 절이 세워졌고,왜 그 많은 불탑과 불상들이 이곳에 있는지, 독특한 불상의 얼굴,누워 있는 와불,목이 딸어져 나간 불상,둥근 석탑 등등 알 수가 없는 미스테리 가득한 사찰이였다. 










불상과 불탑이 불교 전성기 시대인 신라나 백제의 불상이나 불탑과도 많이 달랐으며,투박하면서도? 정성이 조금은 모자른 듯 하면서도? 













묘한 친근하고 약간의 우리가 알고 있는 석탑이나 불상과 달라 묘한 이색적인 느낌이 드는 모습들이였다.














우리나라에서 그리 흔치 않은 와불이 있어서 인지 참으로 묘한 느낌과 서민적 사찰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참고 문헌 자료들: 운주사의 창건과 천불천탑의 건립은 신라 말기 도선국사에 의한 것을 전해지고 있다.도선국사가 풍수지리설에 의거해서 이곳 지형이 배형으로 되어 있어 배의 돛대와 사공을 상징하는 천불과 천탑을 세웠다 하여 일명 천불천탑이라 한다. 그러나 문헌상으로 전해진 사료에는 아직까지 이 점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고 '신증동국여지승람 능성현조'에 “雲住寺在千佛千塔之左右山背石佛塔名一千又有石室二石佛像異座”란 기록이 있어 현존 석불석탑의 유래를 짐작할 수 있다.







사찰경내의 많은 석불 및 석탑은 조각수법이 투박하고 정교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조성연대는 고려 중기인 12세기 정도로 평가되며 일시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 기간을 두고 계속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운주사 와불은 도선국사가 하룻날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워 새로운 세상을 열어 보고자 했으나 공사가 끝나갈 무렵 일하기 싫어한 동자승이 “꼬끼오”하고 닭소리를 내는 바람에 석수장이들이 모두 날이 샌 줄 알고 하늘로 가버려 결국 와불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와불이 일어나는 날 이 땅에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전해온다.








종교의 유무나 믿는 종교를 떠나서 언젠가 전라남도의 땅을 방문한다면 꼭 한번 다녀가셔도 좋을법 하다.

많은 나라를 다니면서도 특히 한국 출장 중 틈을 내어 한국의 가을을 구경하고 사진에 담아 올수 있어서 좋았다. 이렇게 나의 여행이 파리에서 마무리가 되어가는 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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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일의 출장 끝에 가져온 심한 목 감기와 여독으로 지친 몸을 달래야 할것 같아 집 근처 쏘 공원(Parc de sceaux)을 다녀왔습니다.

 

 
 
 

180헥타르의 엄청난 크기의 공원입니다.


여름엔 작은 돗자리와 과일등을 가지고 와서 햇볕을 피해 따스한 햇살을 즐기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곳입니다.

 
 
 
 
 
 
 
봄.가을엔 산책하듯 공원 전체를 돌다보면 지난 시간에 대한 회상과 지친 심신이 위로 받기에 충분합니다.


그냥 집에 있기엔 너무나 아쉬워서 감기를 밀쳐내고 가을 바람을 만끽하고 왔습니다.







여행의 끝자락에서 아쉽고 그리운 추억을 한편한편 꺼내보듯 그렇게 슬로우하게 리마인드되는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이것은 특별히 유명한 유물은 없지만 베르샤유 그리고 퐁텐블로 ,샹티이 성을 설계한 프랑스가 낳은 그 유명한 정원 설계사   

앙드레 르 노트르(Andre Le Notre)가 설계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봄.가을 혹은 9,10월에는 전시회가 자주 열리는 곳이며,여름에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수 있는 공원이자 

연인들의 정원이 되기도 합니다.


이곳도 가을은 한참 그리움에 물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늙어가는게 제일 싫은 이유는 단하나 늙는것은 서럽거나 아쉽지 않은데...,열정과 정열마저 식어버릴까 입니다.


몇주 전 출장 중에 친구가 한 말이 머리에 맴돕니다.


"가슴이 떨릴때 사랑하고,여행하고,일탈을 해야한다. 다리가 떨릴때는 이미 늦다."

 

 




 

 

떨림이란
사랑, 그리움 그리고 수많은 내 안에 잠자던 것들의 몸부림이며, 떨림이 없다는것은 이미 심장이 뛰지 않는것과 같은것 아닐까요?

부디 손에 가진것만 움켜쥐지 말고,눈에 보이는것만 보지 말고,숨이 쉬는것만이 살아 있는게 아니다는것을 가슴으로 공감하는 2013년 

마지막 마무리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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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 Sur Oise)

 

빈센트 반 고흐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 70일간을 보내며,열정을 불살라 80여점의 그림을 그린 곳

그의 생은 짧았지만 그림의 선은 너무나도 굵고 길었다.

 

 

 

여름의 끝자락에 서자..., 어느새 가을의 정취가 물씬나는 비가 내리고 
마음에는 이미 가을 바람이 불고, 발 밑에는 낙엽이 흩날리고 있었다.


이내 옷을 여미고,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마음처럼 마음 한켠에 썰렁한 바람이 불었다.고흐의 묘지에서 그를 만났으며, 소리없는 숨결로 바람같은 작별을 나누고 발을 돌렸다.

 

 

 

 

 

 

 

 

<오베르 교회>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실제 배경이 된 곳>

 

 

 

 

 

 

 

 

 

 

 

 

 

 

 

 

<빈센트 반 고흐의 묘지>

 

 

 

 

 

 

 

 

 

 

 

 

 

 

 

 

<빈센트 반 고흐 묘지 부근에 있는 오베르 마을 경치를 실제 그린곳>

 

 

 

 

 

 

 

 

 

 

 

 

 

 

 

 

 

<오베르 쉬르 우와즈 시청과 실제 그림의 배경이 된 곳>

 

 

 

 

 

 

 

 

 

 

 

 

 

 

 

 

 

<오베르 쉬르 우와즈역 맞은편에 있는 고흐 공원의 고흐 동상(러시아 출신 조각가 자드킨의 작품)>

 

 

 

 

 

 

 

 

 

 

 

<오베르 쉬르 역사>

 

 

 

 

 

고흐를 만나고 돌아가듯 좌측에 떠남과 이별이 아쉬운 오베르 쉬르 우아즈 역이 보인다.

 

 

하긴 누군가에게는 만남의 설렘을 기다리는 가슴 떨리는 곳이기도 하지...,



아름다운 낯선 걸음으로 다가온 첫 남자같은 이 가을에 

함께 할 아름다운 추억과 

사랑과 그 기억을 줄 사람이 있다면..., 

 

 

이곳에서 하루 머물고 싶었다.

 

그리고 

작은 이 고흐가 살던 동네에서 밤이 늦도록  취해보면 새벽을 맞이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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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어느새 

 

 

새벽 안개에 쌓인 너무나 아름다운 샹띠이 성에 와 있었다.

 

 

 

 
 
 
 
 

 샹티이 성 가는 입구에 들어서자 

 
 
새벽같은 진한 그리움이 첫 사랑의 기억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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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박물관과 꽁데 박물관이 있는 샹띠이 성(Chateau de Chantilly)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면 이른 새벽에 숲 속같은  고속도로를 달려 안개를 깨치며 가면 좋을듯한 너무나 도도한듯 빼어난 자태 그러나 한순간이면 충분히 매력에 빠지고 마는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운 샹띠이 성




샹띠이는 숲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정원이 있는 호수 한가운데의 성이며,영국 취향에 젖은 귀족들에 의해 만들어진 경마장과 꽁데 박물관이 있다. 




<아름다운 샹티이 성 전경>







<말 박물관 전경>

 
 
 
 
 
샹티이의 문화유산은 200년 전에 건축된 샹티이 조케 클럽 경마장과 대 외양간의 건물 일부를 이용한 
말 박물관이 있다.루이 헨리 공작이 후생에 말로 태어날 것을 믿고 다음 생을 위해 안락하게 지었다고 한다. 
 
 
 
 
 
 
 
 
 
 
 
 
 
 
 
 
 
 

 
 
 
 
 
 
 
 
 
 
샹띠이 마을에는 부호들의 저택들이 줄지어 있고,그 저택들 뒷편으로는 말타고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산책로가 잘 다듬어져 있다.
 
 
 
 
 
 
 
 
 
 
 
 
 

프랑스의 오래된 역사가 도도히 흐르는 샹티이 성은 파리에서 50여 킬로 떨어져 있다.

루아르 강가의 어느 성에도 빠지지 않는 아름다운 샹티이 성.

 

 

 

 



 

 

 

 

 

몽모랑시 가문에 의해 그랑샤토는 1531년,쁘띠샤토는 1560경에 건축되었다.

한 때의 성주는 16세기에 혁명에 참가했다 참수형을 당하고 루이 13세에게 성을 빼앗기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그 후 부르봉가의 콩데 가문의 소유가 되어 루이 14세의 절대왕권 시대에 문화의 향연 장소로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샹티이 성은 지금은 콩데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 이은 고전 명작들을 볼 수 있는 곳으로 12개의 전시실에는 프랑스,이탈리아,영국,

플랑드르 미술인 회화 1000점,스케치 2500점,필사본 1500점과 고서 30000권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아름다운 샹티이 정원은 프랑스 최고의 조경설계사였던 앙드레 르노트르(1613-1700)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으로 프랑스식 정원과 영국식 정원이 양쪽으로 펼쳐져 있다.

 

 

 

르노트르는 튈르리궁전 정원을 재설계하고 지금의 샹제리제 길을 내는데 기여한 조경 설계사이다. 

 

 

 





 

 

 

 

성의 마지막 주인,오말 공작은 샹티이 성을 콩데 박물관으로 개조 한 후 정부에 기증하면서 콩데 박물관의

 수집품을 외부에 대여 하지 말것과 공작 자신이 배치한 작품 순서를 그대로 유지할 것을 요구했다.

독특한 것은 그 작품 배열순서가 연대별이나 계보에 따른 것이 아닌 작품의 크기에 따랐다는 것이다.








 

샹티이 성을 둘러싼 유명한 일화가 있다.

 

당대 최고의 요리사였던 이 성의 요리사 바텔은 1661년 루이 14세를 위한 3일 동안의 연회를 위해 요리를 

준비했다.그러나 둘째 날 바비큐가 부족하여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또한 마지막 만찬을 위한 생선 배달이

 지연되어 완벽한 향연을 준비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에 자신의 명예가 실추된다고 생각하여 

자살했다는것이다. 



한가지 더 유명한 것은 샹티이 크림의 탄생지이다.케이크에 얹어지거나,커피와 아이스크림과 

딸기의 풍미를 살려주는 샹티이 크림은 이 성에서 만들어졌다고 해서 샹티이크림이라고 불린다. 



아무튼 파리를 찾는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프랑스의 역사와 예술 그리고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프랑스의 귀중한 문화적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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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아요몽 수도원(Abbaye de Royaumont)

 

 

 

파리에서 북쪽으로 35여킬로 떨어진 파리 근교 일드 프랑스에 아스니에르 쉬르 우와(Asnieres-sur-Oise)위치한 시토회 수도원인 호아요몽 수도원은 숲과 사람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세워져 있었다.

 

 

 

 

 

 

 

프랑스 피카르디 지방에 있는 주 우와즈(Oise)는 파리의 북쪽에 있다. 우와즈 지역은 일드 프랑스의 일부와 피카르디의 작은 지역을 합해 신설되었다고 한다. 이 주의 동반부를 가로지르는 우아즈 강은 센 강의 한 지류로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숲이 우거진 계곡을 따라 누아용·콩피에뉴·크레유를 경유하며 천천히 흘러간다. 파리와 릴을 연결하는 오토루트 뒤 노르(Autoroute du Nord)가 이 주를 지나고 있다.

 

 

 

 

 

 

 

 

 

 

 

 

 

 

 

 

 

 

 

 

 

영어식으로 읽는다면 루아요몽이 되겠지만 불어식 발음으로는 호아요몽하는게 맞을것 같다.이곳은 부서진 건물이 남아있고,당시에 온전했던 곳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기초가 되는 초석과 기둥들을 그대로 두었다. 

단단한 돌과 단순한 선과 아치로 꾸며진 이 수도원은 생 베르나르의 엄격한 가르침을 따른듯 하기도 했다.

 

 

 

 

 

 

 

 

 

 

 

 

 

 

 

 

 

 

 

 

 

호아요몽 수도원은 왕이던 생 루이 14세와 그의 어머니 블랑슈 드 카스티유에 의해 지금으로부터 1228년, 무려 875년 전에 대규모를 지어졌다고 한다.당시에는 아름답고 화려한 수도원이었으며,훗날에는 왕가의 묘지로 선택되기도 했다고 한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에 상당부분이 파괴, 소실되었으나, 그 이전까지는 왕들이 예배를 드리던 곳이여서 왕의 수도원으로 불렸다. 이후 문화 중심지로 재건되었고,목화제조소와 고아원으로도 사용되었다.수도사들의 구역은 수도원 한쪽에 지정되어 있으며, 그곳에는 생 루이의  개인 예배당도 있다.

 

 

 

 

 

 

 

 

 

이곳을 방문하면 수도사들이 연수하던 곳과 정원,연못,시토수도회의 소운하를 구경할수 있다.

여름에는 대 성당 안에서 콘서트가 열린다.

 

 

 

사실 이곳은 프랑스의 일급 문화자원으로 꼽힌다.

 

45여 년 전 열성적인 음악 애호가이자 예술 후원자였던 앙리 구앵과 이자벨 부부가 이 수도원을 사들여 ‘인간 학문의 진보를 위한 루아요몽 재단’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후원 활동을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학문 중심이었으나, 최근에는 음악과 무용에 치중하는 등 예술 중심이 되었고 연수, 세미나 등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정원으로 난 창문"  '"음악 시즌" 등 일반 대중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어린이들만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만들어진 작품과 프로그램들은 프랑스는 물론 외국에도 많이 소개되고 있다고 한다. 
 
음악부문에서는 성악, 현대음악, 중세음악, 즉흥음악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1995년에 추가된 무용은 수전 버지 무용단을 상주무용단으로 두고 매년 즉흥, 구성, 레퍼토리 워크숍을 개최한다고 한다. 
 
프랑스의 관광자원이며, 순수 문화예술의 요람인 이 수도원은 현재 프랑스 정부가 지정한 16개 ‘만남의 문화센터’ 가운데 하나입니다.
 
파리 근교 일드 프랑스의 여러 명소 중에서 구경할 명소 중의 하나가 되겠구요.
이곳을 구경 하신다면 오베르 쉬르 우와즈의 고흐박물관과 그가 머물던 라보 여인숙을 구경하시고, 그리고 제가 개인적으로 갤 좋아하는 호수위에 떠 있는것 같은 4계절 모두 아름다운 말 박물관과 콩테 박물관이 있는 샹티이 성을 하루 잡아서 다녀오면 좋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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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끝물...,

이제는 금방이라도 비가오면 두툼한 외투가 그리울것 같은 파리의 날씨

 

 

블로뉴(Boulonge) 숲이나 뫼동(Meudon)휴양림에 가면 밤을 주워올 수 있을것만 같다.

신학기가 시작되는 9월이면, 가을을 만끽 할수 있는 전형적인 파리 날씨가 되겠지

 

 

 

 

 

 

5.6킬로를 떨어져 있는 에펠탑

자동차로 20여분 운전하면 갈수 있는 에펠탑...,

가까워서 오히려 가지 못했던 곳

 

 

 

 

이 여름이 다 지나가기 전에 다녀와 보았다.

 

 

 

 

 

 

트로카데로 정원에서 바라본 에펠탑

 

 

 

 

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은 찾아볼 수 없지만

 

아직도 파리엔 에펠탑이 반짝이고,설레이는 사랑이 반짝이고

늦은 밤 어울림이 있어서 좋은것 같다.

 

 

 

 

 

 

10시 정각...,

11시 정각...,  

그 후 5분여 시간 에펠탑이 모두 반짝이며, 

 

 

 

설레이는 사랑이 가슴에 빠담빠담 거린다.

 

그렇게 파리의 밤이 깊어간다.

 

 

 

 

 

 

 

 

3층 꼭대기에서 레이저 빔이 나온다.

 

 

 

 

 

 

 

온 파리를 밝힐것 같은 반짝이는 조명과 사방을 돌아가며 비추는 레이저 조명 불빛

 

 

집을 떠난 여행객들에게 마치 등대처럼 파리를 구경할때에 방향을 찾게 해주는 그리움이 서린 곳

 

 

 

 

요즘에야 자동차 네비게이션이 발달해서,자동차를 가지고 어디 돌아다녀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세상 

 

휴대폰에서도 금방 쉽게 네비를 찾아 쓸수 있는 시대,지금 있는 현위치를 동서남북으로 바로 탐색할수 있지요

 

 

 

하지만 

 

 

10여년도 훨씬 전 처음으로 파리에 정착하며 살 적에는 지도를 펴들고 운전을 했었습니다.

일방통행로가 많아서 찾아간 길도 돌아 나올때는 한참을 헤매던 기억들...,

 

 

그럴때 마다, 저 멀리 바라보이는 에펠탑의 밝은 조명이 내 위치를 알게 해주던 

마치 변함없이 늘 한자리에 떠있는 내 마음의 북극성 같았지요.

 

 

 

그렇게 찾아다니며 여행하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그러면서 내 삶이라는 내 이유로 가족들만 파리에 두고 살아야 해서...,

언젠가 나도 모르게 그리움의 파리.... 마음의 렌드마크가 되어버렸지요

 

 

 

 

 

 

 

어느날인가...,

 

문득 문득 지난 시간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기억 중...,

청춘의 어린 시절 ㅋ

 

12시면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으며 여름을 나고,

첫사랑을 그리워하고,알다가도 모를 불면의 밤을 살던 그 때

 

 

그 아름다운 아련한 밤이 지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함으로..., 심장이 뛰던 그때 

 

 

그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그 사람이 그리울때면 달리기만 해도 좋던 그 때

 

 

 

이제 그 밤이 이렇게 아름다운 빛으로 지고 있습니다.

 

 

 

 

 

 

 

여름의 파리는 센느강과 에펠탑이 아름답습니다.

특히 야경은 더할 나위없지요.

 

 

더 늦기 전에 너 늙기 전에 
여행을 계획하신다면평생 한번은 파리를 여행하시면 좋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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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시게 푸르던 날

하늘을 벗삼아 달랑 카메라 하나만 들고,

 

 

일요일 촌 사람 읍내 나가 사람구경,시장구경하듯 그런 일상보다 더 일상적인 하루를 보내고 왔습니다.

 

 

파리는 8월 한달 바캉스시즌에는 주차가 무료이지만 차는 집에 두고,

 

 

 

메트로를 타고 생 미셀(St-Michel)역에서 내려 노틀담을 들려-시테섬에서 시원한 맥주한잔을 하고-

퐁네프 다리를 보고-센느강을 따라-생 제르맹 데프레 성당을 들려-루브르 박물관-카루젤정원-

튈르리 정원-콩코드 광장에서 오벨리스크를 보고-콩코드다리 건너-앵발리드-돔성당-나폴레옹 묘-

멋진 알렉산드르 3세다리를 구경하고서-에펠탑이 바로 보이는 이에나다리-사이요궁-트로가데로 정원을 

보고-에펠탑에 올라 파리 시내를 모두 내려다 보고-바토무슈 유랍선을 타고 늦은 저녁 집에 돌아왔다.

 

 

 

 

 

 

 

 

 

 

푸른 하늘과 노틀담 대성당

 

 

 

 

 

 

 

 

 

 

 

하늘만큼이나 아름다운 대 성당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기다려서 대성당 꼭대기에 올라 파리 시내를 내려다 보라.

 

저멀리 몽마르트 언덕이 보이고,저멀리 에펠탑과 신개선문 라데팡스와 돔 성당이 보인다

 

 

 

 

 

 

 

 

 

 

 

 

 

노틀담 성당을 바라보고 달리는 유람선 그리고 아름다운 연인들...,

 

 

 

 

 

 

 

 

 

 

 

여행객과 관광객을 실은 유람선은 오늘도 센느강 위를 떠 다닌다.

누군가의 가슴에도 젊은 시절 아름다운 추억이 흐르고 그리고 오래토록 떠 다니겠지

 

 

 

 

 

 

 

 

 

 

 

파리는 혼자다니면 외로워진다..., 사랑할 시간이 있을때 누군가를 사랑해 보면 어떨까...,

물론 파란 하늘처럼 가슴이 넓고 푸르고,시린 영혼을 가진 눈동자라면 더 좋겠지...,

 

 

 

 

 

누군가 아름다운 여인은 아름다운 시간속에 있고멋지고 듬직한 남자는 내가 바로보는 시계속에 있다고 했다.


 

 

 

 

 

 

어디로 가면 좋을까?

모르겠다면...,

 

 

 

모르는곳을 한번쯤은 가보는게 좋겠지!

 

인생이 그렇자너...,

가봐야 알지...,

 

 

 

-몽파르나스

-생 제르맹 데프레 성당

샤틀레-

레알-

생트샤펠-

시테-

 

 

 

 

 

 

 

 

 

 

 

 

 

오픈 투어 버스와 루브르 박물관-카루젤 정원 초입

 

 

 

 

 

 

 

 

 

 

 

 

 

피라미드 유리 지붕 아래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멋진 기념 사진도 한장 찍고,멋진 연기자가 되어보자.

 

 

 

 

 

 

 

 

 

타고 싶었다..., 그런데 같이 탈 사람이 없다 ㅋ

아무나 붙잡고 탈수는 없지 않은가?

 

 

 

 

인연이란..., 억겁의 시간을 거쳐서 오는것인데...,

 잠자리 날개가 바위를 스쳐서 그 바위가 하얀 꽃가루가 될 때에 인연은 찾아온다고 했지 않은가?

그렇게 귀하고 소중한 인연을 마구 만들수는 없지...,

 

 

 

 

 

 

 

 

 

 

튈르리 정원에서 바라보이는  콩코드 광장에 연필깍아 놓은듯 꼭대기가 금장인 오벨리스크(사진 정면)와 

그 뒤로 저멀리 개선문 그리고 신 개선문 라데팡스가 보인다.

 

 

 

 

물론 저 오벨리스트와 개선문 사이에 엘리제 궁과 샹제리제 거리가 있다.거기서 왼쪽으로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에펠탑이 있지


한잔의 시원한 맥주, 따스한 커피 한잔을 함께 하더라도 인연을 소중히 한다면파리의 여행 가이드가 되어줄 수 있다..., 

물론 시간이 문제겠지만...,ㅋ

 

 

 

 

 

 

 

 

 

분수대 반대쪽(루브르를 바라보는 방향)에서 바라보면 

루브르에서 개선문까지를 잇는 일직선상의 루브르 궁전과 튈르리 정원 사이의 카루젤 정원의 

작은 카루젤 개선문(사진 정면)이 보인다. 

 

 

 

 

 

루브르 궁전에서 카루젤 개선문-튈르리 정원의 분수대 그리고 콩코드 광장의 오벨리스크- 

샹제리제 거리의 개선문-샤를 드골 광장을 지나 신 개선문(라데팡스)까지가 정확히 일직선상에 놓여있다. 

 

 

 

 

 

 

 

 

 

 

카루젤 광장(Place du Carrousel)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공공 광장으로 루브르 박물관 안마당 한쪽이 열린 부분에 있어, 한때 1871년까지는 그곳에 튈르리 궁전이 있었다. 

 

 

 

미술관과 튈르리 정원 사이에 위치하며, 튈르리 정원의 동쪽에 있다. 서쪽으로는 콩코드 광장이 있다.

카루젤(carrousel)은 원래 군사용 마장마술의 종류를 뜻하는 것이었다. 카루젤 광장이 이렇게 불리게 된 것은 1662년의 일로, 루이 14세가 그곳에서 마장마술 시범을 보이게 하여 관람한 것에서 유래한다.

 

 

 

 

 

 

 

 

1789년 10월 5일 파리 시민이 폭도로 변해 베르사유 궁전에 난입했고,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그리고  어린 아이, 심지어는 프로방스 백작(후의  루이 18세)과 아내, 그리고 엘리자베스 왕녀를 사로잡아 파리로 연행하여 가택에 연금시켰다. 국왕과 왕비는 튈르리 궁전에서 파리 시민들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왕은 일가를 이끌고 프랑스를 탈출하려는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다. 왕비는 왕과 떨어지고 떠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그 계획 중 일부를 거부했다. 다른 계획은 국왕의 우유부단함 때문에 실행되지 못했다. 실제로 도주를 결행한 것은 상당히 늦어진 1791년 6월 21일, 그러나 그 시도는 (바렌느 사건) 실패로 끝났다. 도주 약 24시간 후 바렌느에서 발각되어 1주일 만에 파리로 끌려 돌아오게 되었다.

 

 

 

1792년 6월 20일,군중들이 튈르리 궁전에 난입하여, 프랑스 국가에 대한 충성의 상징인 빨간 모자(프뤼기아 모자)를 국왕에게 씌운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해 1792년 8월 10일 무장한 군중이 튈르리 궁전에 난입하여 국왕 일가를  입법회의에 세우려고 했다. 약 1시간 반 후, 궁전은 무리에게 유린되었고, 스위스 용병들이 학살되었다. 약 700명이 죽었고 그 피투성이된 시체가 궁전 앞 광장(당시는 카루젤 경기장(Cours du Carrousel)이라고 불리고 있었다)과 궁전의 정원과 센느강 제방에 쌓여있었다. 8월 13일 국왕 일가는 떵플탑에 유폐되었다.

 

 

1792년 8월 21일 카루젤 광장에 단두대가 세워졌다. 그 후 두 번 정도 단기간 철거되었지만,1793년 5월11일까지거기에서 총 35명이 처형되었다.

 

 

1793년 8월 2일,단두대가 있던 그 자리에  바로 전달인 7월 숨진 혁명 지도자 장 폴 마라를 기리는 나무 파리미드가 건설되었다. 그 비문에는 “지금은 돌아가신 마라 영혼. 1년 7월 13일 (프랑스 혁명력)죽음. 그는 무덤 아래서 여전히 반역자를 떨게 한다. 위험한 손은 사람의 사랑을 방해했다"라고 적혀 있었다. 또한 암살되었을 때 잠겨있던 좌욕조와 책상도 그곳에 전시되었다. 이 유물은  1794년 7월 28일까지 그대로 놓여 있었다.

 

 

1848년 혁명 시 튈르리 궁전은 폭도에게 약탈되어 심한 손상을 입었다. 1871년 5월 23일 오후 7시, 파리 코뭔을 제압하려고 하는 동안, 자치단체의 명으로 12명의 남자가 가연성 물질(석유 등)을 사용하여 튈르리 궁전에 불을 질렀다. 불은 48시간 타올랐고, 궁전은 불타서 내려앉았다. 불타버린 폐허는 그대로 11년간 방치되어 있었다. 1882년 프랑스 국민의회는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폐허의 철거를 의결하고,1883년 철거가 시작된다. 불탄 자리에서 발견된 물건들은 개인기업가에 매각되었다.

 

 

궁전이 철거되어 빈 터가 된 곳을 공공 광장으로 만들었고,1662년부터 “카루젤 광장”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806년부터 1808년 튈르리 궁전의 문으로 지어진 카루젤 개선문(Arc de Triomphe du Carrousel)은 궁전 철거 후 카루젤 광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이 되었다. 

 

 

이것은 나폴레옹이 그때까지의 전승을 기념하여 1806년에 건설이 시작된 개선문이다. 

더 유명한 개선문도 같은 해에 제작되어 제작에 13년이 소요되었고 크기도 거의 두 배가 되었다.

 

 

 

 

 

 

 

 

 

 

카루젤 개선문 설명

 

 

 

 

 

 

 

 

 

 

 

 

카루젤 정원에 누운 여인상

 

 

 

 

 

 

 

 

 

 

 

오벨리스크 (그리스어로 쇠꼬챙이)은 높고 좁으며 4개의 면을 지닌, 점점 가늘어지는 피라미드 모양의 꼭대기를 지닌 기념 건조물이다. 고대 오벨리스크들은 한 덩어리의 암석으로 만들어졌다. 

 

 

 

오벨리스크에는 전승을 기념하거나 왕의 위업을 과시하는 문장이나 모양을 새겼다고 하는데,현존하는 최대의 것은, 이집트 제18왕조 하트셉수트 파라오의 카르나크 신전에 세운 것으로 높이 30m이다.

 
 

 

 

 

 

 

 

 

1755년 앙제 자끄 가브리엘에 의해 설계된 이 광장에는 원래  루이 15세의 기마상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루이 15세 광장”으로 불리었다. 이후 프랑스 혁명의 발발로 기마상은 철거되고,이름도 “혁명 광장”으로 고쳐졌다. 1793년 1월21일 프랑스 혁명 중에는 루이 16세 이곳에서 처형되었고, 10월 16일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참수된 형장이기도 했다. 

 

 

1795년 현재 “콩코드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시작했고, 공식 이름이 된 것은 1830년이다. 콩코드(Concorde)는 화합, 일치라는 뜻으로, 이 광장의 이름은 이러한 어두운 역사를 넘어 평화화 화합으로 나가자는 프랑스의 염원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한다.

 

광장의 중심에는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서 가져온 룩소르(Luxor) 오벨리스크 (클레오파트라의바늘)가 놓여있다. 기원전 1260년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 이집트 테베(Thebes, 현재의 룩소르)의 람세스 신전에 있던 것으로 1829년 이집트의 총독이자 군사령관이던 알바니아 출신의 무하마드 알리가 프랑스에 선물하였다. 오벨리스크에는 프랑스로의 운송 과정이 묘사되어 있으며, 4년의 운송 기간이 걸렸다. 

 

최상단 부분에 소형 피라미드 모습의 금박이 있었으나 아시리아인의 침입과 페르시아인의 점령 과정에서 분실되었는데 프랑스 정부에서 복원 작업을 벌여 1998년 5월 14일 복원이 완료되었다. 복원 자금에는 약 1백 50만 프랑이 소요되었으며, 수명은 약 40년이다. 복원으로 인해 오벨리스크의 높이는 이전보타 2m 가량 높아지게 되었다.

 

 
 
 
 

 

 

 

 
 
 

저멀리 에펠탑과 알렉산드르 3세 다리가 보인다.지금 사진을 찍고 있는 곳은 콩코드 다리이다.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다리 중 하나인 알렉산드르 3세 다리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 이름을 따서 지은 다리로써,러시아와 프랑스 동맹을 기념하기 위해 1896~1900년에 걸쳐 건설된 다리입니다. 프랑스 센느강의 지류에는 천여개의 다리가 있고,

파리 센느강에 놓인 다리는 모두 36개라고 합니다.

 

 

 

 

 

푸른 하늘에 눈부시게 빛나는 저 금장 말을 보십시오,금방이라도 하늘을 향해 날아갈듯 합니다.

 

 

 

 

 

 

 

 

 

 

 

 

 

 

 

 

 

 

 

 

 

 

 

 

 

 

 

늘 가보는 곳이지만 참 아름다운 다리입니다. 

야경은 더욱 더 멋지지요...,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늦은 저녁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사진 한장 

그리고 달콤한 키스같은 저녁을 보내시면 어떨까요...,그래서 파리에서는 혼자이면 안되는 것 아닐까요?ㅋ

 

 

 

 

 

 

 

 

 

센느강을 따라 수많은 유람선이 달리고 있을때,저녁 7시가 넘었는데도 백야로 인해 센느강의 물결은

 여전히 그녀의 눈동자처럼 반짝이며 나에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운 에펠은 영원히 그자리에서 나의 이정표가되고,나의 랜드마크가 되고 있었다.

 

 

 

 

 

 

 

 

 

 

아득히 구름 사이로 솟은 에펠탑이 보인다.

 

 

 

저기 이에나 다리를 지나면 사이요궁과 트로카데로 정원을 볼수 있다

 

 

 

 

 

 

 

 

 

 

사실 에펠보다 더 높은 건물도 있다. 몽파르나스 타워! 

 

 

파리모나미 1호점 포트 오를레앙(Porte d'Orleans)에서는 몇분이면 갈수 있는 가까운 몽파르나스 타워가 

바로 그 건물이다.파리 남부 14구에 있는 59층짜리 타워로 몽파르나스 재개발 사업에 따라 1972년에 건설된 건물이다.  사실 타워라기 보다는 고층빌딩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건물의 높이는 209m다. 

 

 

 

59층 옥상에서 보이는 파리경치가 장관이다.

 

 

 

엘리베이터로 38초면 파리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장소에 도착한다. 

파리를 360도 각도에서 바라 볼 수 있는 파노라마 뷰의 장소...,

 

 

 한눈에 파리를 보고 싶다면 꼭 들러봐야 하는 곳이다.투명 유리를 통해 파리를 보다 더 가깝고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나중에 야경과 함께 따로 몽파르나스타워를 포스팅 하겠습니다.




파리 온 시내와 에펠탑을 정면에서 한눈에 감상 할 수 있는 장소임은 틀림없다. 파리의 주요 관광지 및 유적지 곳곳을 내려다 볼 수 있고,날씨가 좋은 날에는 오를리(Orly) 공항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도 볼 수 있다.
해가 지고 파리에 어둠이 내리면 밝혀지는 조명으로 인해 더욱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 할 수 있는 곳 입니다.

 

 

해가 있을떄가서 해가 지면 야경을 찍고 내려오면 좋겠지요.아니면 밤에 따로 가셔도 좋은 곳 입니다.

 

 

 

에펠탑을 놓고 몽파르나스를 자랑하고 있으면 에펠이 싫어하겠지요? ㅋ

나중에 몽파르나스 타워 포스팅을 기대하세염 ㅋ

 

 

 

 

 

 

 

 

 

 

에펠탑은 7년마다 한번씩 페인트 칠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수시로 250만개의 볼트와 나사를 확인하고 조여야한다 

 

 

 

사진은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2층 전망대이다.

 

 

 

 

 

 

 

 

3층 전망대이다. 

2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한다.

 

 

 

전망대 꼭대기에는 여러 통신장비들이 설치되어있다. 그만큼 높다는것이겠지 

 

 

 

 

 

 

 

 

 

에펠탑 코앞의 이에나 다리에서 찍은 에펠탑

 

 

 

이곳에는 에펠탑을 모두 담을수 있는 트로카데로 정원과 샤이오 궁이 있다.

 

 

꼭 한번은 이곳에 들려 에펠탑을 찍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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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네프 (Pont Neuf)라는 이름은 센느강에 있는 다리 중에서 최고로 오래된 다리입니다. 

하지만 Pont Neuf 라는 불어를 그대로 직역하면 "새로운 다리"라는 뜻으로
건설 당시에는 파리의 새로운  신 다리였습니다.


<퐁네프 다리를 걸치고 있는 센느강 가운데의 작은 섬/ 퐁네프 다리에서 보이는 다리 밑>



사실 퐁네프 다리가 세워지기 전까지는 모두 목조 다리만 있었는데,
퐁네프 다리부터 석조로 된 다리들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1년 프랑스 영화 레오 까락스 감독의 "퐁네프의 연인들"로 유명해진 이 다리는 

줄리엣 비노쉬와 드니 라방을 일약 스타로 만든 영화이지만,


사실 이 다리를 유명하다고 가보면 정작 볼것은 없는 영화때문에 한국 사람들에게 

좀 친숙하고 알려진 다리입니다.


<퐁네프 다리 밑을 지나는 퐁네프 유람선>




퐁네프다리 중간에는 앙리 4세의 기마상이 세워져있습니다. 파리에 세워진 최초의 기마상이라고 합니다. 


<퐁네프 다리 중간에 세워진 앙리 4세의 기마상>




<다리 건너편/럭셔리한 명품을 취급하지만 라파예트보다는  조금은 더 대중적인 사마리텐 백화점의 전경>




퐁네프 다리에 굳게 채워진 세계 각국의 청춘 남녀들의 사랑을 염원하는 사랑의 열쇠들










청춘은 한 때이고,

가는 세월 붙잡지 못하니



찰나같은 인 생

한 순간이고

한 때이니


부족하더라도 넘치지 않기를

넘치더라도 부족하지 않기를


쉬이 오는 것

쉬이 가니


지금 이마음처럼

영원히 변치않기를











니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일 아침"하늘이 하얗다고 해줘"



그게 만일 나라면 난 "구름은 검다"라고 대답할거야

그러면 서로 사랑하는지 알수 있는거야


영화-퐁네프의 연인들 중에서











멋진 파리여행 파리모나니

http://cafe.daum.net/tesa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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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가 살았던 만종과 이삭줍는 여인의 밀밭이 있는 바르비종을 다녀오다(Barbizon)

 

파리에서 약 55km 정도 떨어져 있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바르비종.

 

 

L'Autoruote de Soleil 고속도로 A6를 타고 40여분 남짓 가면 이곳에 다 다를수 있다.물론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퐁텐블로를 구경하고 나오면서 들리는 방법이나,아니면 먼저 이곳을 보고 퐁텐블로를 가는 방법이 있다.

 

 

어떤 교통편으로 다녀올것인가 먼저 정해져야 할것이다.

 

 

아무튼 자동차로는 파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곳에 있으니,자동차를 이용하여 간다면 퐁텐블로와 바르비종을 하루 정도로 모두 여유있게 둘러보고 올 수 있을 것이다.

 

파리모나미 게스트 하우스와 여성 전용 아파텔에서도 기차나 자동차로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가이드 차량을 이용하려 한다면 직접 파리모나미에 사전에 문의 예약하면 될듯하다. 

 

 

퐁텐블로에서 간단히 준비해 간 식사(김밥과 음료 과일,와인)를 먹고 바르비종으로 향했다.

바르비종 입구에 도착하니,밀레가 만종과 이삭줍는 여인을 그린 밀밭이 나왔다.잠시 차를 새우고,사진촬영을 했다.


 

<바르비종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오늘쪽에 타일를 붙여 만든 모자이크 형식 그림과 밀밭이 보인다>

 




 

 

 

<밀레가 만종를 그리던 밀밭>

 



 

 

 

바르비종은  파리 근교에 있는 퐁텐블로 숲 어귀의 작은 마을이다.가을 밤 늦도록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앉아 와인에 취해보고 싶은 이쁘고 아담한 마을입니다.

 

 

 

 

<바르비종이라는 예술가들이 사는 아틀리에가 많은 마을 초입>







바르비종파란 

1835-1870년 경에 

 밀레를 비롯한 프랑스 풍경화가들이 이곳 바르비종에서 머물며 활동하던 그때의 화가들을 지칭한다.

주요화가로는 바르비종의 일곱 별 밀레,루소,코로,뒤프레,디아즈 게 라페냐,트르아용,도비니등을 말한다.



 

 

 

 

 

 

 

 







 

 

 

 

밀레의 그림을 감상할수 있는 바르비종에 있는 밀레의 낡은 아틀리에(미술관)입니다.

아틀리에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을 못하게 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밀레의 그림을 본 저의 느낌은...,

밀레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그린것이 그의 그림의 특징이었습니다.

 

 

 

반면 밀레의 그림을 고흐가 그대로 그렸는데...,

고흐의 작품은 고흐답게 색채가 강하고,강렬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밀레가 살고 아뜨리에로 사용했던 집>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못했던 밀레는 아담한 방 3개짜리 집에 살면서 아뜨리에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밀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가에서 자랐을 뿐 아니라,화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할 무렵,농가에 들어가 생애를 농민 화가로서 보냈습니다.밀레는 1849년 파리 근교 퐁테느블로 숲속에 자리한 바르비종이란 작은 마을로 찾아들게 됩니다.



이 마을엔 밀레 말고도 자연을 동경해서 찾아든 화가들이 있었는데,이들을 가리켜 미술사에서는 바르비종파(派)라고 부르며,바르비종을 무대로 한 자연파 화가들의 명칭이 되었습니다.

 

 

바르비종을 방문하시면 Ganne 박물관을 꼭 들려 보시기 바랍니다.

밀레,루소,디아즈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그들이 살던 방에 그린 벽화? 그림도 볼수 있습니다.

 

갼(Ganne) 박물관은 당시에 가난한 화가들을 지원하던 여인숙이였는데,지금은 그것을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르비종 거리 풍경들

 

<바르비종 거리에 있는 성당과 레지탕스를 위한 기념비>

 

 

 

 

 

 

<포도주 창고라는 간판이 보입니다.>

 

 

 

 

 

 

<인형의 집에서 보는듯한 작은 아틀리에>

 

 

 

 

 

파리는 여름도 좋지만 가을에는 더욱 더 운치가 있어 좋습니다.프랑스는 특별히 가을이거나 특별히 겨울이지 않어서 항상 사랑하는 사람과 거닐기 좋은 날씨이지요.비가오면 비가오는대로 아름답지요.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와 보세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거닐고 싶은 마을>

 

 

 

 

 

 

<새장에 갇힌 날개잃은 천사 /우리의 모습을 보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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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텐블로 궁전(Château de Fontainebleau)

 



12세기부터 퐁텐블로의 광대한 숲은 왕가의 사냥터였습니다. 그리고 숲 가운데 휴식을 위한 저택이 하나 있었습니다.그 자리에 이 엄청난 크기의 궁전이 세워졌는데,주인공은 '프랑스 르네상스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수와 1세 입니다.퐁텐블로 성은 프랑스 왕들의 휴양지 겸 사냥터였고,나폴레옹이 이곳에서 퇴위하였다는 사연이 많은 성이기도 하지요.그 후 루이16세까지 7대의 왕이 이 궁전 건설에 심혈을 기울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성탑 꼭대기에는 프랑수와를 상징하는 "F" 새겨져 있습니다.

 

 

 

 

 

 



 

 

프랑스 정치의 중심은 파리의 베르사이유 였습니다.하지만 정치에 지칠때마다 프랑스 왕들은 퐁텐블로를 찾았을 것 입니다.그리고 이곳에서 사냥도 하고,파티도 열었을 것 입니다.

 

 

 

 

 

 

 

 

 

 

 

 

 

 

 

베르사이유 궁전은 이곳 퐁텐블로성을 보고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인데....
저 개인적으로는 울창하고 광대한 숲과 함께 어우러진 퐁텐블로가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동안 내가 만일 왕이였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ㅋ 생각해 보았습니다.멋진 성과 수많은 방에 가득찬 장식들, 문만 열면 내다보이는 앞마당? 의 멋진 정원과 운하 
정원을 거닐며 다가갈수 있는 광대한 숲새벽 이른 아침 말을 타고 달리면서 느끼는 바람과 숲 사이...,

 

 

 

 

 

 

 

 

 

 

 

 

 

 

 

 

 

 

 

아무튼 나폴레옹이나 프랑스의 왕들이 부러웠습니다, ㅋ

 

 




파리 모나미 1호점 몽후즈 게스트 하우스나 2호점 포트 수와즈 여성전용 아파텔에서는 60여 킬로 정도 떨어져 있으며,자동차로는 일명 L'Autoroute du soleil, 고속도로 A6a를 타고 1시간 정도 걸리는 멋지고 아름다운 숲이 있는 퐁텐블로 궁전을 구경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버스나 기차 혹은 자동차로 가는 방법은 파리모나미에 직접 문의하시면 좋을듯 하구요.

다만 참고로 이곳을 가신다면 자동차를 가지고 갈수 있다면 퐁텐블로에서 나오는 길에 가볼수 있는 

밀레의 그림을 감상할수 있는 바르비종에 있는 밀레의 낡은 아틀리에(미술관)를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깜박했네요. ㅋ 

특히 제가 찍은 사진 뒤 배경의 계단은 아주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불어로 '페리슈발'이라 불리는 계단인데 말발굽 모양입니다.퐁텐블로가 사냥을 위한 성이란 것을 잘 말해주는듯합니다.이 계단은 영화의 단골 촬영장소이기도 합니다.

 

 

 

 

 

나폴레옹 1세 박물관에는 엄청 많은 역사적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으며,박물관 사진은 너무 많아 제 블로그에는 포스팅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수많은 프랑스인들의 피크닉장소로 사랑받고 있는 퐁텐블로...,

작은 바구니에 빵과 과일 그리고 와인을 가지고 가서 돗자리를 펴 놓고 간단히 한잔 할수 있는 여유가 있는 퐁텐블로(베르사이유 궁전에서는 이런 기분을 낼수 가 없지요.엄청난 인파에 줄을 서서 기다리기를 최소 1시간 이상은 기본 ㅠ 하지만 퐁텐블로는 기다릴 필요없이 여유롭고 한가하게 정원과 운하 그리고 숲을 즐길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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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7월14일 불꽃 축제-
왕족,왕권국가였던 프랑스가 왕족이 없는 국민의 국가가 되었던 날

 




프랑스 혁명(1789년 7월 14일~1794년 7월 27일)은 프랑스에서 일어난 시민 혁명이다.프랑스 혁명은 엄밀히 말해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을 함께 일컫는 말이지만,대개는 1789년의 혁명만을 가리킨다. 이때 1789년의 혁명을 다른 두 혁명과 비교하여 프랑스 대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절대 왕정이 지배하던 프랑스의 구제도인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하에서 부르주아 계급이 부상하고(18세기에 모든 선진국에서 나타난 특징적인 현상),미국의 독립전쟁으로 자유의식이 고취된 가운데,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평민들의 불만을 가중시켜 마침내 흉작이 일어난 1789년에 봉기하게 하였다.

 

도시민과 농민대중의 개입(대공포)으로 폭력양상을 띤 이 혁명은 2년간에 걸쳐 전 체제를 전복시켰다.이 혁명은 혁명의 소문을 들은 피지배민족의 자유와 독립쟁취 의식을 고취하여 여러민족을 거느린 주변 강대국들을 불안하게 하였다.

 

프랑스 혁명은 앙시앵 레짐을 무너뜨렸지만 혁명 후 수립된 프랑스 공화정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의 쿠데타로 무너진 후 75년 동안 공화정,제국,군주제로 국가 체제가 바뀌며 굴곡의 정치적 상황이 지속되었으나 역사적으로 민주주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프랑스 혁명은 크게 보면 유럽과 세계 역사에서 정치권력이 소수의 왕족과 귀족에서 일반 시민에게 옮겨지는 획기적인 역사의 전환점이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육체 노동자, 노숙인,소상인 등의 프롤레타리아 계급들도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혁명에 참여했는데,이들은 장 자크 루소의 공화주의 이념의 영향으로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사회체제에 항거해야 한다”는 사상에 기초하여 혁명에 가담하였다.이러한 혁명전통은 유럽 민주주의 역사에 기여하여 유럽 대부분 국가들의 헌법에는 부당한 사회체제에 저항할 권리인 저항권이 명시되어 있다.

 

 
 

 
 
 
7월 14일 아침,파리 민중들은 혁명에 필요한 무기를 탈취하기 위하여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였다.민중들은 도개교(跳開橋)를 내리고 감옥으로 쇄도하여,감옥을 점령하였다.
 
이 습격의 성공은 바야흐로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바스티유 습격) 이들이 프랑스 대혁명에 가담한 이유는 기득권층들에 대한 감정적인 불만이나 부르주아의 선동 때문이 아니라,"자연으로 돌아가자"면서 평등사회를 추구한 장 자크 루소의 영향으로 불평등한 사회체제에 저항하는 사회개혁의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시민혁명의 영향으로 민중이 지배계급에 저항하는 권리인 저항권을 헌법으로 존중한다.
 
 

 

 
 
 
프랑스하면 흔히 자유와 평등,박애라고 알려져 있지만,처음에는 자유와 평등,권리였다.1789년 8월 26일에 발표한"프랑스 인권선언"에도 박애는 거론하지 않았다.
 

선언문 제2항에서 “자유와 소유권,안전 그리고 억압에 대한 저항”이라고 밝히어 자유와 소유권,안전(생존권),저항권을 천명하였다.1793년에 제정한 '프랑스 헌법'에도 자유와 평등,안전,소유권을 말하였고(특히 제8조는 안전과 인격, 권리 그리고 재산만을 거론하였다),1799년 12월 15일 "통령 정부 선언문"에서도“소유권,평등 그리고 자유라는 거룩한 권리”를 인용하였을 뿐 박애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나타나지 않는다.

 

혁명과 관련하여“박애”를 명시한 기록은 1793년 파리 시 집정관 회의이며,다음과 같은 표어를 모든 집에 내걸도록 하자고 결의하였다.


“공화국을 위해 흩어지지 말고 단결하라. 자유와 평등, 박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념 속에는 르네상스 이래 인본주의의 영향으로 인간존중,'인간존엄'이라는 천부인권사상이 전제되어 있고 이는 곧 인도주의,박애주의와 연결되어 혁명정신인 우애,박애정신을 포함한다.


1875년 공화국 헌법(제3공화국 헌법)이 채택되면서,프랑스 공화국의 공식 이념으로서 자유와 평등,박애가 확고히 자리잡았다.

 

그래서 프랑스는 자유,평등,박애 정신이 깃들어 있는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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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시내를 나가면서 핸펀으로 찍어본 사진입니다.


사진으로 함께 가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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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모나미 게스트하우스에서 대학생 기숙사로 유명한 시떼 유니버시테와 몽수리 공원은 

걸어서 가거나 트람을 타면 갈수 있는 곳입니다.

 

 

몽수리 공원은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이 노동자들을 위해 세우려한 공원중의 하나입니다.

런던식 이 공원은 알팡드에 의해 1867년과 1878년 사이에 세워졌으며,이곳 두 철도길을 없애고,

19세기말의 자연을 표현하는 공원으로 수많은 나무와 식물,꽃들을 사이에 호수를 파고 굴도 뚫었습니다.

 

몽수리 지역 이름의 유래는 모크수리(Moque-Souris)의 변형된 이름으로서,예전의 가난했던 지역을 가르킨다고 합니다.1870년대부터 쏘 라는 지역과 대학 기숙사 촌을 이어주는 철도가 생기며,이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오늘날의 몽수리 공원 주위에는 예쁜 집들이 가득합니다.

 

 

 

<몽수리 공원에서 찍은 사진들을 구경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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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리브(Autolib: 오토(Auto) + 자유(Libert’e)의 합성어)

 

 

2011년도 125 파리 시에서 시범적으로 ‘오토리브(AUtolib: 오토(Auto) + 자유(Libert’e)의 합성어)’ 라는

이름의 전기차 공공대여 서비스가 시작되었습니다.

 

블루카를 개발한 볼로레의 최고경영자 뱅상 볼로레는 우리의 꿈은 단순히 자동차 공유 사업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그의 말처럼 녹색성장,녹색도시의 시범적인 공공 사업이 될것인지 부푼 마음으로 기대해 봅니다. 

 

 

 

 

 

 

지금은 당장 알 수 없지만,파리시의 목표대로 개인 소유의 차량을 줄이고,도심의 붐비는 주차 대란을 줄이며,

대기오염 농도 30% 이상 줄이겠다는 녹색목표와 환경보호는 물론 기름값, 보험료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에

기분 좋은 기대를 해 봅니다.

 

2007년 시작된 파리의 벨리브(무인 자전거대여 서비스 시스템)과 함께 오토리브로 친 환경 녹색도시를

준비하고,계획하는 파리시의 노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오토리브는 차량은

"블루카"로 프랑스 볼로레가 공급하게 되며, 4시간 충천으로 250km의 운행이 가능하며, 4인 탑승가능하다고 합니다.

 

-차명: 블루카 (4인승. 이탈리아 피닌파리나가(페라리, 마세라티) 설계 제작)-배터리 : 솔리드스테이트-길이: 3.75m-최고 속력 : 시속 130km-최대 주행거리 : 4시간 충전으로 250km-운영 : 파리와 수도권 250개 정류장에서 250(2012 5월 정류장 1200, 차량 3000대 계획)-이용 : 대여용 전기차를 정류장에 비치. 대여용 차를 사용한 뒤 목적지 근처 다른 오토리브 정류장에 반납

회원권제도로 보증금 250유로(38만원)와 월 사용료를 지불.

-회원권 구입 : 1 144유로(22만원), 일주일권 15유로, 하루권 10유로-운행요금 : 연회원 첫 30 5유로(7600), 두 번째 30 4유로, 

한 시간 뒤부터 30분 마다 6유로 

일주일과 일일권 첫 30 7유로, 두 번째 30 6유로, 한 시간 뒤부터 30분 마다 8유로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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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무인 자전거 대여 시스템 "벨리브" Velib= Velo(자전거)+ Liverte(자유)

2007년 7월15일 시행/750개의 대여소에서 10,000대의 자전거 대여로 시작되었으며,

 

시민들의 폭발적인 호응으로 이후 자전거를 20,000여대/대여소를 1,500여개소로 늘이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 시내중심에는 반경 300m안에 하나씩의 대여소가 있는 것이다.

 

 

자전거는 파트릭쥬앙(Patrick Jouin)이라는 유명한 디자이너가 디자인하였으며,화려하지는 않지만,도시적인 샘플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파리와 잘 어울리는 파리의 명물 자전거가 되었습니다.

 

 

나이,성별을 불문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사용할수 있는 자전거 구조적 기능도 매우 좋으며,이로 인해 각기 다른 모습과 복장으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이 촌스럽거나 어색하지 않으며,시간이 지나도 유행에 뒤지지 않을, 오랫동안 싫증나지 않는 디자인이라고 해도 좋을듯합니다.

 

 

 

개인적 생각으로,파리의 벨리브 자전거 대여 시스템이 빠른 시간에 자리를 잡고,

시민들의 호응이 큰 것에는  관광 도시라는 도시적 특성과 아주 춥거나,덥지 않은 파리의 계절적 특성 그리고 시민들의 문화적 특성(Green,Clean City건설)이 있겠으나, 또 다른 이유로는 파리시의 면적이  타 국가의 큰 도시에 비해 작은 편이므로 자전거를 이용하는것이 매우 용이하다 할수 있겠습니다.

(예,서울시 면적이 605.25km2 인데 파리는 105.4km2 정도 밖에 안됨)

 

 

실제로 유명한 파리의 총 연대 파업등으로 교통수단이 기능을 못하면,

벨리브의 기능은 100% 이상 활용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때에는 아침 일찍나가 자전거 대여를 하지 않는다면 안된다고 보시면 됩니다.ㅋㅋ

 

참고로 이런 자거거는 빌리면 바로 죽음입니다. ㅋㅋㅋ 

 

 

 

이용방법

1.회원 가입시에는  보증금으로 150유로를 내야하고,1년 가입비는 29유로이며,

 

2.단기로 대여할 때에는 신용카드로 내야합니다.

(물론 이때에는 신용카드에서 150유로을 Deposit해야하며, 반납 후에 문제가 없으면 지출되지 않습니다.)

*1일가입비는 1유로,일주일 가입비는 5유로입니다.*

 

 

대여할 때에 최초 30분은 무료이며,이후 30분 단위로 요금이 누진되어 계산됩니다.

(예,1시간은 1유로,1시간 30분은 3유로,2시간은 7유로,5시간은 51유로)

 

 

짧은 거리 이동이나,짧은 시간 이용하는 것이,비용 절감에 좋다는 것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3.지하철이나 트람,버스등에 사용하는 교통카드(Pass Navigo)로도 지불 할수 있습니다.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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