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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빈드라나드 타고르는 이런말을 했습니다.

오로지 이론적인 마음은 오로지 날만 있는 칼과 같다. 그것을 쓰다가는 손에 피가 흐르게 된다.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나는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가 남에게 보여주기만 하는 멋진말과 행동만을 한다면 우리가 속것을 다 풀어 헤치고 발가벗고 사는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실천하지도 못할 수많은 학식과 덕목을 가지고 있으면 멋있는 삶을 살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결코 멋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성경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사실은 내게 제일 무서운 말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야고보서 2:26)

내게 믿음은 죽음보다도 두려운 것입니다.또한 내게 믿음이란 내가 약속하지 못하는 세상의 유일한 것입니다.




행하지도 못하는 믿음을 두고 나는 거짓된 입술로 얼마나 달콤한 기도를 했는지 모릅니다.

혀가 제일 정직하다고 믿었으나 혀가 제일 사악한 것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내게 제일 부족하고 내게 제일 필요한 것은 믿음이 아니라 행함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믿음에는 믿음의 깊이 만큼 행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내 믿음의 깊이는 들여다 보면 금방 끝이 보입니다.
내 추한 모습과 내 일그러진 분별력에 통탄할 따름입니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영적 분별력 그것 하나 뿐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얼마나 많이 나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했는지 모릅니다.


당신의 아픔에 함께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나누어 짊어지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멋진 말을 달콤한 입술과 추악한 혀로 당신을 얼마나 더 많이 아프고 상처받게 했는지 부끄러울 뿐입니다.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하면서 
난 말로만 사랑했고 입술로만 행했으며 이렇게 추한 진실함으로 살았습니다.



나는 언제 어디서든 내 스스로의 자기 표현에 거짓없이 솔직했습니다.
어찌보면 당당함이 주는 내 기쁨만을 가지려고 그랬는지 모릅니다.
그것이 타인에게는 상처가 되고 더 날선 칼을 세우게 했습니다. 
내 영혼과 가슴에 솔직하지 못하면서 난 타인을 솔직하지 못한 양심없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내 스스로 가진것을 과시만 하고 어느 경우에도 그것을 부족한 자를 위해서 사용하지 않는 나는 
어찌보면 내 배만 채우는 배부른 돼지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스스로의 과오를 가슴의 통곡없이 입술로 회개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혀가 뽑히는 아픔을 감내하고서라고 진정성을 가지고 회개하고 뉘우쳐야 하는데...,



나의 간절함은 영적 분별력 뿐입니다.속히 어두운 밤이 지나고 밝은 영적 아침이 찾아 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파수꾼이 아침 기다리듯 내가 아침을 기다림이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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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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