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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를 찾아나선 여행에서 

나는 반쯤 잃어버리고 살았던 내 잃어버린 감성을 다시 찾는 여행이 되었다.

 

 

 

 

 

 

 

 

그의 삶을 되돌아보고,열심히 관련 서적을 찾아 그를 찾아가는 늦은 밤 여행은 내 서재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설레이는 여행,다시 나는 일상에 돌아와 잊지 못할 추억을 되새기며, 여행을 끝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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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를 찾다. 제 4편- 오베르 쉬르 우와즈를 떠나며

 

 

파리에서 약 40km 떨어진 오베르 쉬르 우와즈 이곳에서 나는 고흐의 정취를 고스란히 담아 올수 있었습니다.

작은 마을 골목 골목에서도,오베르 성당 넘어 그의 묘지를 찾아가면서도 넓은 들판에서 화구를 들고 그림을 그리던 그의 모습이 아련합니다.하룻밤을 이곳에서 머물며 늦은 밤 고흐기 걷던 길을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고흐가 생전에 늘 걸었던 라부여인숙으로 가는 골목길

 

 

 

 

가슴에 묘한 전율과 풋풋한 당시의 느낌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찾아가는 방법을 소개 합니다.

 

1-1. 자동차 이용시:A-15번 고속도로에서 세르지-퐁투와즈(Cergy-Pontoise) 방향으로 가다가-A115번 보베 아미엥(Beauvais-Amiens)방향으로 진입-메리 쉬르 우와즈 쌍트르(Mery-sur-Oise-Centre) 출구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후

메종 드 반 고흐(Maison de Van Gogh) 표지판을 따라가면 된다.


1-2. 열차/RER 이용시쎙 라자르역(Gare Saint-Lazare) 역이나 북역(Gare du Nord)에서 퐁투와즈(Pontoise)행 열차를 타고-퐁투와즈까지 간다.퐁투와즈에서 페르상 보몽(Persan-Beaumont) 열차로 갈아탄다.-이후 오베르(Auvers)에서 내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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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장 안내

3월초에서-10월말까지 개장하며,매주 수요일-일요일 10h-18h(입장 마감은 17h30) 요금은 6유로

 

 

2-1. 반고흐의 방과 시청각실

이곳에서는 고흐가 70여일을 머물던 라부 여인숙의 2층 방을 볼 수 있다.영어나 불어로 간단한 설명을 들을 수 있으며,고흐 관련 서적이나,엽서등을 구입할수 있다.

시청각실에서는 비디오와 오디오를 통해서 고흐의 당시 풍경과 그림들을 볼수 있습니다.

 

 

 

 

 

 
 
 
 
 

 

2층 고흐의 아주 조그만한 5번 다락방에서 고흐의 정취를 느낄수 있으며,그의 고뇌했던 삶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고흐가 자살한 이후 미신에 따라 자살자의 방으로 알려져 그의 자살 이후로는 한번도 임대되지 않았다고 전해 집니다. 아무것도 없는 텅빈 조그만한 방에서 그가 마지막 밤을 보냈던 그 순간으로 가는 순간 나는 마치 그를 만난듯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현재까지도 1890년대 이후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현재는 관리상의 이유로 그가 잠자던 철재 스프링 침대만 덩그라니 놓여있습니다.

 

 

 

 

 

 

 

고흐가 라부 여인숙에 머물던 당시 그는 매우 가난했으며,그림이라곤 한점도 팔수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동생 테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언젠가 카페에서 내 작품전을 열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어"라고 말입니다. 그의 꿈이 그가 머물던 오베르 쉬르 우와즈에 실현될 수 있을지..., 그 "언젠가"는 언제쯤일까요? 가슴이 먹먹해져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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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라부여인숙 레스토랑이곳은 라부여인숙 아래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점심은 수-일요일 12h-14h15 까지이며,저녁은 금-토요일 19h-21h 까지 한다.개장은 3월부터-11월말까지만 운영한다.







사적지로 등재되어있는 라부 여인숙은 1993년 꽁빠뇽 뒤 드보아르(장인전수기관)의 세밀한 복원작업으로 1890년대의 당시 그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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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또다른 Tip/세르지 퐁투와즈(Cergy-Pontoise)
오베르 쉬르 우와즈를 찾아오시면서 환승하는 세르지-퐁투와즈(Cergy-Pontoise)에 들러 보시면 또다른 여행이 주는 맛을 느낄수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라데팡스 지하고속도로를 따라 나오면 그림같은 도시가 눈앞에 펼쳐집니다.바로 북서쪽으로 약 25㎞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발두아즈 주의 신도시입니다.

 

 

 

 

 

 

 

 

 

1965년 이후 파리 외곽에 건설된 몇개의 신도시 가운데 하나로서 간선도로와 철로에의해 수도 파리와 연결되어 있다.우아즈 강을 따라서 휴양시설들이 개발되어왔으며, 프랑스의 대표 신도시 세르지 퐁투아즈는 치밀한 사전 준비와 30년 이상 장기적인 계획으로 건설된환경도시이다. 

 

 

 

 

 

 

 

인구 18만명이 살고 있는 면적 8000㏊의 신도시 세르지·퐁투아즈  1인당 10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도록 하는 식목조성기준을 마련하여 도시의 30%를 녹지공간으로 조성하였고 30만평 규모의 인공호수와 레저시설이 유명하다.

 

 

 

 

 

 

 

 

퐁투아즈는 역사적으로도 유서 깊은 지역이다. 한때 왕이 살기도 했다는 이곳은 바이킹과 노르만족이 프랑스를 침략했을 때 파리를 지키는 마지막 요새였다. 때문에 오래된 교회와 성당, 박물관 등 많은 유적과 함께 크고 잘 다듬어진 농장이 많다. 19세기 중순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 카미유 시세르의 작품 중에도 ‘잘레의 언덕, 퐁투아즈’ ‘퐁투아즈의 강변과 다리’ 등 퐁투아즈를 소재로 한 그림들이 적지 않다.

 

 

 

 

 

따뜻한 봄 기운에 가슴이 봄 처녀가 된듯 하다.

 

 

 

 

 

오래되고 고즈넉한 도시 분위기 때문에 정년을 마치고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려는 고급 공무원이나 직장인이 파리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퐁투아즈에 왕족이나 귀족들이 살았다면 세르지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살던 곳이다. 세르지·퐁투아즈에는 이 2개의 코뮌 외에도 9개의 코뮌이 포함돼 있는데 이들 지역도 세르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퐁투아즈의 유물과 유적들은 관광상품으로 개발돼 세계 곳곳에서 관광객이 이곳을 찾고 있으며, 세르지에는 대형 쇼핑몰과 행정관청, 대학, 병원 등 행정, 교육, 상업 등 각종 편의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으며, 세르지 중심가를 관통하는 고속도로변에 세워진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 있어,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교육시설로는 세르지·퐁투아즈 종합대학을 비롯, 프랑스 최고수준의 상경계열 그랑제콜(5년 과정의 대학원대학) 에섹(ECCEC), 국립예술학교, 국립전자공학대학, 교육대학, 고등농업학교 등 10여 개의 고등교육기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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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가 오베르 쉬르 우와즈에서 그린 일부 작품과 오베르 쉬르 우와즈에서 실제 그림의 배경이 된 곳을 비교 합니다.






작품명/까마귀가 나는 밀밭





까마귀 나는 밀밭의 실제 배경이 된 곳이다.










바로 이곳이 두사람이 있는 오베르 거리와 계단이라는 그림을 그린 장소이다.





작품명/두사람이 있는 오베르거리와 계단










라부 여인숙 건물 맞은 편에서 보이는 오베르 시청이다.





작품명/오베르시의 시청이다.










시청 건물을 구경하고 아래로 내려오면  차 다니는 대로 변에 고흐 동상과 공원이 있다.










자드킨 러시아 출신 프랑스 조각가가 조각한 고흐의 동상이다.이젤을 메고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 그 동상이 있다.









고흐 공원 풍경이다.










고흐 동상 뒤편의 하얀집을 배경으로 아래의 하얀집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고흐를 찾아 나선 길에서 마주하는 고흐 흔적의 도로 표지판

그 표지판에는 고흐가 태어났던 네덜란드 ZUNDERT로 가는 도로표지판의 글씨가 선명하다.





"빈센트 반 고흐를 찾다." 마지막 제4편으로 찾아갑니다.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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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생전에 그림으로 남기고  예배를 드리던 오베르 쉬르 교회를 지나 빈센트 반 고흐 묘지를 찾아 가는 길이다.

 

 

 

오베르 성당을 왼쪽에 끼고 돌아 올라가는 길이다.

고흐 생전에 그는 얼마나 많이 이 길을  올랐을까? 



이 길을 올라서면 밀밭이 보이고 저 넘어 오베르 교회 묘지가 보인다. 그가 70여일 머물면 80여편의 그림을 그렸던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이 보인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언덕을 넘어서 멀리 바라보이는 풍경 이곳에서 그는 까마귀 나는 밀밭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열정과정열의 빈센트 반 고흐

1890.7.27 리볼베 권총을 가슴에 발사함.

 

29일 세상을 떠남. 

 

6개월 후 동생 테오는 1891년 1월25일 죽음.

 

두 형제는 오베르의 같은 공동묘지에 나란히 잠듬. 

 

 

 

(고흐 자살 당시엔 생명을 잃을 정도의 중상은 아니었다고 함. 따라서 그의 죽음은 미스터리로 남아있음)

 

 

 

 

 

 

 

 

 

 

아직도 우리는 그를 기억한다.

 

누군가 그를 기리며 놓고 간 장미가 그의 묘비명에 놓여있다.

 

 

 

 

 

 

 

 

 

 

묘지 뒤 벽에 세워진 십자가 

 

사람들의 죽음뒤로 더욱 더 가치를 발하는 십자가

 

 

 

생전에 품지 못하던 십자가를 품고 가는 우리는 십자가 인생일지도...,

 

 

 

 

 

 

 

 

 

 

묘지에서 바라본 오베르 성당이 저만치 눈에 보인다.

 

철조망이 가로막혀 있지만

 

 

 

 

우리의  삶과 죽음에 경계는 없다.

 

 

 

 

 

 

 

 

 

 

군가의 묘비 앞에 놓인 마른 장미 한송이

 

화려했던 그의 삶이 장미 같았겠지...,

 

 

 

열심히 사랑했고 마음 놓아 울었으며  누군가의 기억에 영원히 잠들지 않는 꽃이 되었으리라

 

 

 

 

 

 

 

 

 

 

울림이 있는 글 하나가 삶을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우리 삶을 풀어쓰면 모든게 ㅅ ㅏ ㄹ ㅏ ㅁ 입니다.

 

 

 

가슴 아픈 사연 하나가 여기에 하트의 묘비명에 고스란히 천사의 모습으로 누워 있습니다.

 

 

 

 

"여기 다니엘 콘스탄드 로마루가 잠들다.부모의 슬픔속에 1909년 2월 15일 6개월만에 세상을 떠나다."

 

"사랑하는 작은 천사여,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렴"

 

 

 

 

 

 

 

 

 

 

 

사람은 누구나 잠들면 십자가를 가슴에 품고 산다.

 

 

 

 

 

 

 

 

 

 

 

 

고흐 묘지를 방문하다가

 

누군가의 묘지에 놓인 눈이 슬픈 강아지를 발견했다.

 

 

 

얼마나 사랑했으며 저렇게 그 자리에서 눈물같은  흔적이 되어 있을까?

 

비에 젖고,눈에 얼면서두 일년을 한자리에서 그를 여전히 안아주고 있는 너

 

 

 

 

너의 애잔한 콧등에 내 가슴에서 눈물이 나고

 

너의 슬픈 눈동자는 내 심장에 한줄기 시린 가슴으로 다가오는 빛이된다.

 

 

 

 

 

 

 

 

 

 

 

 

사랑하는 이여!  난 너를 아직도 기억하며,너의 흔적같은 내가 너와 함께 한다.

 

 

 

 

주인의 차가운 대리석을 끌어안고 있는 너, 너의 삶에 축복있으리라!

 

 

 

 

 

 

 

 

 

 

 

고흐 묘지를 나오니 황량한 바람이 불면서 들판에 밀밭에 싹이 돋고 있음을 알았다.

 

 

 

 

 

역시 남은 우리들의 삶은  ㅅ ㅏ ㄹ ㅏ ㅁ 이다.

 

 

 

 

 

 

 

 

 

 

 

 

묘지를 나오면서  보이는 벤치를 보니...,

 

 

 

죽음은 우리의 끝나지 않은 또 다른 삶이고  쉬어가는 인생길 같다는 생각을 했다

 

 

 

 

 

 

 

"빈센트 반고흐를 찾다."다음 제3편- 감성으로 가는 여행를 기대하세요!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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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표적인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를 만나러 오베르 쉬르 우와즈에 간다.



사실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의 Zundert에서 출생했으며,1890년 7월 29일 이곳 Auvers-sur-Oise에서 사망했으며 오늘 찾아가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 sur Oise)는 그가 권총으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약 70여일을 살았던 곳으로 그의 삶 중에 의미가 깊은곳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램브란트이후로 가장 뛰어난 네덜란드 화가로 손꼽히며,세느, 고갱과 더불어 네덜란드의 화가이자 드로잉맨으로 가장 뛰어난 후기 인상파 화가이다. 그는 이곳에서 80여점의 귀한 작품을 남겼다.




<고흐의 작품 L’eglise d’Auvers-Sur-Oise를 그린 실제의 교회이다.>








오르세 미술관에서도 다른 곳에 절대 빌려주지 않는 작품 중 하나이다. 




<작품 L’eglise d’Auvers-Sur-Oise>






간략히 그의 삶을 들어다 본다.아버지는 신교도의 목사였고, 고흐는 성직자로서 교육받았으며, 1878년 그의 학업을 버리고 예비 목사로서 일하기 위해 벨기에 있는 the grim Borinage 주의 가난한 갱부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는 Borinage에 남았고, 가난과 정신적 병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그는 자신의 세계를 포기했고, 그의 학업을 포기했던 정열과 열정의 사람..., 빈센트 반 고흐.





그가 그림이라는 예술의 세계을 발견했을 때 그것은 일종의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것의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그의 이러한 뜨거운 혼자만의 열정으로 그는 새로운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그것은 그에게 비참한 가난, 영양 실조등으로 고통받게 했으며, 이러한 불굴의 열정이 그의 삶 10년 중에 약 800개의 그림과 데생 작품을 그리게 했는지 모르겠다. 그는 그림을 전혀 팔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했으며, 환각증세 그리고 신경성의 질환으로 고생했다. 



Arles에서 그는 고갱을 만났으며 그러나 그 둘의 싸움의 결과로 그 유명한 사건인 고흐가 자신의 왼쪽 귀를 자름으로 인해 그는 더욱 고통받게 된다. 1889년 5월 그는 자신의 요구에 따라 Arles 가까운 St Ray의 정신요양소로 갔다.  



그리고 생의 마감을 예감한듯 그는 그곳에서 StarryNight라는 세계적인 그림과 150개의 데생을 만들었습니다.







<그가 죽기 직전까지 머물던  Auvers-Sur-Oise에 있는 라부 여인숙>










<두사람이 있는 오베르의 거리와 계단이라는 작품의 배경이 된 곳> 









그는 살아서 오직 한개의 작품을 팔았으며,그래서 그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그의 예술 세계는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도비그니 미술관/관광 정보 센터>










<열정과 정열의 사나이 빈센트 반 고흐/러시아 조각가 자드킨의 작품/조각에서도 그가 얼마나 가난했는지를 엿볼수 있다.>







1890년 7월 29일 그는 권총으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삶의 마지막 70일동안 70개의 유화작품을 남긴 Auvers-Sur-Oise의 그가 머물던 여인숙 레스토랑 들어가는 길 지금은 그의 머물던 숙소가 관광객을 맞이한다.






<고흐가 머물던 방과 침대를 구경할수 있다.시청각자료실과 선물코너 그리고 고흐의 방이 있다.>









<고흐 동생이자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드르 반 고호와 빈센트 반고흐가  묻힌 무덤 올라가는 길 >









<언제나 함께 하길 원하던 두형제의 무덤 /그의 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묘지>








<동생 테오드르 반 고흐 묘지/ 일년 뒤에 형을 따라간 동생>









이곳은 Auvers-sur-Oise는19세기 유명화가들인 세잔,도비니,파시로등도 사랑했던 마을이다.



<오베르쉬르 우아즈 시청 건물>


 


"빈센트 반 고흐를 찾다" 2편,3편,4편으로 나누어 올려 드리겠습니다.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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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 Sur Oise)

 

빈센트 반 고흐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 70일간을 보내며,열정을 불살라 80여점의 그림을 그린 곳

그의 생은 짧았지만 그림의 선은 너무나도 굵고 길었다.

 

 

 

여름의 끝자락에 서자..., 어느새 가을의 정취가 물씬나는 비가 내리고 
마음에는 이미 가을 바람이 불고, 발 밑에는 낙엽이 흩날리고 있었다.


이내 옷을 여미고,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마음처럼 마음 한켠에 썰렁한 바람이 불었다.고흐의 묘지에서 그를 만났으며, 소리없는 숨결로 바람같은 작별을 나누고 발을 돌렸다.

 

 

 

 

 

 

 

 

<오베르 교회>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실제 배경이 된 곳>

 

 

 

 

 

 

 

 

 

 

 

 

 

 

 

 

<빈센트 반 고흐의 묘지>

 

 

 

 

 

 

 

 

 

 

 

 

 

 

 

 

<빈센트 반 고흐 묘지 부근에 있는 오베르 마을 경치를 실제 그린곳>

 

 

 

 

 

 

 

 

 

 

 

 

 

 

 

 

 

<오베르 쉬르 우와즈 시청과 실제 그림의 배경이 된 곳>

 

 

 

 

 

 

 

 

 

 

 

 

 

 

 

 

 

<오베르 쉬르 우와즈역 맞은편에 있는 고흐 공원의 고흐 동상(러시아 출신 조각가 자드킨의 작품)>

 

 

 

 

 

 

 

 

 

 

 

<오베르 쉬르 역사>

 

 

 

 

 

고흐를 만나고 돌아가듯 좌측에 떠남과 이별이 아쉬운 오베르 쉬르 우아즈 역이 보인다.

 

 

하긴 누군가에게는 만남의 설렘을 기다리는 가슴 떨리는 곳이기도 하지...,



아름다운 낯선 걸음으로 다가온 첫 남자같은 이 가을에 

함께 할 아름다운 추억과 

사랑과 그 기억을 줄 사람이 있다면..., 

 

 

이곳에서 하루 머물고 싶었다.

 

그리고 

작은 이 고흐가 살던 동네에서 밤이 늦도록  취해보면 새벽을 맞이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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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어느새 

 

 

새벽 안개에 쌓인 너무나 아름다운 샹띠이 성에 와 있었다.

 

 

 

 
 
 
 
 

 샹티이 성 가는 입구에 들어서자 

 
 
새벽같은 진한 그리움이 첫 사랑의 기억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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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네프 (Pont Neuf)라는 이름은 센느강에 있는 다리 중에서 최고로 오래된 다리입니다. 

하지만 Pont Neuf 라는 불어를 그대로 직역하면 "새로운 다리"라는 뜻으로
건설 당시에는 파리의 새로운  신 다리였습니다.


<퐁네프 다리를 걸치고 있는 센느강 가운데의 작은 섬/ 퐁네프 다리에서 보이는 다리 밑>



사실 퐁네프 다리가 세워지기 전까지는 모두 목조 다리만 있었는데,
퐁네프 다리부터 석조로 된 다리들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1년 프랑스 영화 레오 까락스 감독의 "퐁네프의 연인들"로 유명해진 이 다리는 

줄리엣 비노쉬와 드니 라방을 일약 스타로 만든 영화이지만,


사실 이 다리를 유명하다고 가보면 정작 볼것은 없는 영화때문에 한국 사람들에게 

좀 친숙하고 알려진 다리입니다.


<퐁네프 다리 밑을 지나는 퐁네프 유람선>




퐁네프다리 중간에는 앙리 4세의 기마상이 세워져있습니다. 파리에 세워진 최초의 기마상이라고 합니다. 


<퐁네프 다리 중간에 세워진 앙리 4세의 기마상>




<다리 건너편/럭셔리한 명품을 취급하지만 라파예트보다는  조금은 더 대중적인 사마리텐 백화점의 전경>




퐁네프 다리에 굳게 채워진 세계 각국의 청춘 남녀들의 사랑을 염원하는 사랑의 열쇠들










청춘은 한 때이고,

가는 세월 붙잡지 못하니



찰나같은 인 생

한 순간이고

한 때이니


부족하더라도 넘치지 않기를

넘치더라도 부족하지 않기를


쉬이 오는 것

쉬이 가니


지금 이마음처럼

영원히 변치않기를











니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일 아침"하늘이 하얗다고 해줘"



그게 만일 나라면 난 "구름은 검다"라고 대답할거야

그러면 서로 사랑하는지 알수 있는거야


영화-퐁네프의 연인들 중에서











멋진 파리여행 파리모나니

http://cafe.daum.net/tesamis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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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사람은 냄새나고 더럽다고 생각하겠지만...,

신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게 발이다.


가장 냄새나고,땀 흘리고,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나를 지탱해주며,

내 무거운 삶의 무게를 다 짊어지면서도 불평 한마디 않는 고마운 발이다.



내가 가고자하는 곳을 가장 먼저 몸으로 몸소 실천하는 아름답고 고마운 발...,
지금까지 이곳까지 나아오게 했으며,지금까지 힘든 일을 굳세게 견뎌준 보이지 않는 나의 참 일꾼이다.


이런 일꾼이 세상에 한명만 더 있다면...,


그런 사람이 있을까...,


딱 두발 뿐이다.






혀는 나의 가장 정직하고 솔직하다.

어떠한 것도 절대로 평가하고,있는 그대로를 말해준다.


맛이 있으면 있다고,없으면 없다고,쓰면 쓰다고,달면 달다고,시면 시다고 할 줄 아는 내 충신 중에 충신이다.


사람 간 볼 줄 모르는 직언만 하는 진솔한 나의 가장 절친이다.


눈은 콩깍지가 씌워질수 있고 현혹될수도 있다.
귀는 좋은 말만 들으려 한다.

코는 좋은 향기는 좋다고 하지만 싫은 냄새는 깍쟁이 얌체처럼 피하는 녀석이다.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감정을 가진 머리가 아니다.

머리는 이기적이여서  자기 위로를 잘하고,자기 이유에 충실한 계산적인 녀석일뿐이다.


감성은...,

글쎄....,


머리가 만드는게 아니고,가슴에서 나오는 느낌을 언어라는 코드를 통해 멋진 조합을 잘하는 정도 아닐까? 



눈은 아름다운것을 바라보는게 아니다.

때로는 진실을 외면하려고 하고,부끄럽게도 가장 용기 없는 녀석이다.

모든것을 다 아는냥 제일 잘난척을 하지만 눈은 모든것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다.

그저 앞길만 제대로 봐주면 된다.


제대로 된 사람 하나도 구별 못하게 해서 번번히 속임을 당하게 하는 제일 나쁜 녀석이다.


내게 가장 아름다운 것은 얼굴이 아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입술도 아니다.

난 가장 추하고,가장 냄새나고,가장 누추한 곳에서 힘들어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어떠한 사랑도 받지 못하는 발이 제일 아름답다 생각한다.






혀는 어떠한가?드러내 놓고는 어떤한 것도 못하지만 아름다운 말을 만들어주고,

가장 솔직하게 내게 말하는 제일 사랑스럽고 믿음직스러우며,아름답고,가장 값진 녀석이다.

사랑하고 고맙다.
모든 감사와 갈채를 너희에게 보낸다.


욕심이 있다면 모든것을 살리고,아름답게 보며,가치를 부여해주는 눈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얼굴를 보지말고,사람의 가슴을 보는 눈이 되어준다면 난 가장 행복한 사람일것이다.


시끄럽고,재잘거리는 잔소리도 받아줄수 있고,거짓과 진실을 구별하며,

좋은 말만 듣는게 아니라 가장 듣기 싫은 소리를 가장 아름답고 감사하게 들어주는 귀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사람은 얼굴이 이쁜 사람이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감추지도 숨기지도 않는 영혼을 가진 사람일뿐...,


자기 감정에 충실한 스스로에게 솔직한 혀와 발처럼 살아봄이 어떠하겠는가?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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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떠있는 무수한 별들처럼 

내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은 내 가슴에 빛나는 별이 되어 있었다.

휙~~~하고 

바람소리를 내고 반짝이던 별하나가 가슴에 떨어졌다.

바람처럼 돌고 돌다가 만났던 무수한 별 하나,별 둘,별 셋...,
그렇게 수많은 별들이 환하게 내 밤을 밝히는 그리운 사연들이 되었고,

 

 

때로는 지는 아쉬운 별도 되었다.

떨어진 별은 내 가슴에 어두운 이별이 되었고,

아직 내 가슴에 남아 반짝이는 별은 따뜻한 사연을 간직한 그립던 그리움이 되어 있었다.

그리움이 내 가슴에 별이 되었을 때,

마음에는 반짝이는 빛이 생겨났고,

두려운 밤은 더 이상 어둡지 않고 밝은 빛이 들었다. 

 

 

 

 

늦은 저녁 깜깜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날씨가 제법 춥다.
엇그제까지도 서재 의자에 걸쳐 놓았던 가디건을 덥다고,가을에 입어야지 하며 옷장에 넣어두었는데...,


오늘 그 가디건을 다시 꺼내 입는 나를 보면서...,


휴~~~,

그리움은 이렇게 문득 찾아 오는것이라는 걸 알았다.


인생은 보내야 할때가 있고,맞이 해야 할때가 있다.
맞이하는것은 기뻐하고 보내야 하는것은 슬퍼하는게 우리이다.

하지만 아쉽지 않고,두려움 없는 삶이 어디 있으며,그립지 않은 인연이 어디 있으랴...,


오늘 만나는 많은 시간속에 

그 사람이 그립다면 보내지 않는 그리움 되기를,기뻐 맞이하는 그리움 되기를 바래본다.


그 사람에게 내가 그리운 사람이 되고,

그 사람이 내게 그리운 사람이 된다면...,

내가 먼저 다가서는 그사람의 그리움이 되어서 영원히 보내지 않는 그리움 되리라.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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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너를 붙잡지 못해서 
어제는 그렇게 슬펐나보다

가슴에 부르다만 노래가 
그리움이 되어 버리고,

가버린 너를 그리워하다 
낯선 입맞춤으로 오늘을 보낸다

 

 



마른 입술,젖은 눈가는 서로 다른 슬픈 이별을 하고,

뛰는 가슴,멈춰버린 기억은 서로 다른 슬픈 만남이 되는구나

가버린 그리움은 어제 인데,
왜 오늘이 슬픈지...,


한줄기 세찬 소나기는 너를 보내고도 울지 못한 내 마음인가 보다...,

그사람 그리울 때 그리워 할걸...,

이제는 비에 젖은 그리움도 그립기만 하구나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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