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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모나미 여성 전용델'에 해당되는 글 67건

  1. 2014.04.25 햇볕이 잘드는 창가에 앉아서...., 8
  2. 2014.04.12 봄여행의 첫 날....(Honfleur/옹플뢰흐) 2
  3. 2014.04.05 마음의 이야기 4
  4. 2014.04.03 -원칙중심의 삶이 중요한 이유- 10
  5. 2014.04.03 삶과죽음 4
  6. 2014.04.02 - 처음처럼이란 - 8
  7. 2014.04.02 -나는 오직 오늘의 사람입니다.- 10
  8. 2014.03.31 어린시절 작은 깨달음이 주는 행복중에서- 2
  9. 2014.03.29 그리움은 운명이고 사랑은 선택이다. 10
  10. 2014.03.27 그리운 당신의 얼굴 2
  11. 2014.03.26 클라우드 모네의 여행.3편-모네의 뒤안길에서(모네의 집 찾아가는 방법) 2
  12. 2014.03.26 클라우드 모네의 여행.2편-꽃이 되어버린 사람
  13. 2014.03.25 클라우드 모네의 여행.1편-인상주의 클라우드 모네 2
  14. 2014.03.25 어둠과 빛 1
  15. 2014.03.24 빈센트 반 고흐를 찾다. 3편-감성으로 가는 여행 4
  16. 2014.03.24 여행중에 찍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내사진들
  17. 2014.03.23 베르사유 궁전뜰에 있는 조각상을 소개합니다.
  18. 2014.03.22 빈센트 반 고흐를 찾다. 1편-오베르 쉬르 우와즈에서 그를 만나다.
  19. 2014.03.22 몽수리를 간다.내 뺨을 스쳐가는 바람..., 아직도 난 그사람의 그리운 연인으로 살고 있다.
  20. 2014.03.21 나폴레옹을 엘바섬으로 보내던 이별의 광장에 서다.
  21. 2014.03.21 피흘림을 기억하는 콩코르드 광장의 외침이 들리는가!!! 3
  22. 2014.03.21 나는 오늘 세기의 지성 사르트르와 보부와르 그리고 나의 시성 보들레르를 만났다. 2
  23. 2014.03.21 노트르담의 하늘과 만나다. (포앵제로) 2
  24. 2014.03.20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는 설레임을 계획하다.(파리-혼플레르-몽생미셸-생말로) 10
  25. 2014.03.08 내가 그리워 하는 사람이 당신일때...., 4
  26. 2014.03.06 천상병 시인의 나의 가난은 4
  27. 2014.03.06 그대여 울지말라! 그리운 사람을 보내니, 평생 그리움을 얻지 않았느냐? 6
  28. 2014.03.06 너를 만난다는것은 이처럼..., 6
  29. 2014.03.01 기대..., 2
  30. 2014.02.26 •그대 그리운 날• 4
따스한 봄날...,

햇볕이 스며드는 창가...,

빠알간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한다.




가슴에 스며드는게 햇볕만이 아니고,
포근하고 정겨운 사랑과 그리움과 낭만이 함께 스며든다.


Vin de table(뱅드 타블)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그림을 그려 놓은듯 이쁘게 차려진 곳으로 달려가 쟁반 가득 담아본다.


양손에 쥔 것은 나이프와 포크,
그러나 난 함께함 과 나눔으로 맛을 썰어 그리움을 먹는다.



아~~~,따스한 봄볕이 너무나 좋다.







*Vin de table(이곳 레스토랑에서 직접 만든 포도주 )



(밀레가 있는 바르비종에서)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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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행의 첫 도착지...,


Honfleur(옹플뢰흐)



파리 집으로 부터 210킬로(약 두시간)를 달리면 도착할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노르망디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1995년에 세워진 노르망디 다리를 통해서 르아브르까지는 20여분이면 갈 수 있다.(이 다리가 세워짐으로 45분이나 걸리던 것을 20여분이면 곧장 갈 수가 있게 되었다.)




옹플뢰흐는 센 강 하구에 있는 오래된 항구 마을이다.이곳은 인상파 화가의 선구자인 부댕(모네의 스승)과 독특한 천재 작곡가 에릭사티(어느 장르에도 속하지 않는다.)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화려한 요트들이 즐비하게 세워진 조용한 휴양지같은 항구 마을이다.




5월이면 옹플뢰르에서는 뱃사람의 축제가 열린다.구경할 곳은 그리 많지 않으나,캔버스에 그려놓은 듯한 항구가 가히 일품이라 할수 있겠다.이곳에서는 사이다의 어원이 된 CIDRE가 유명하다.다른 지역과 달릴 노르망디 지역은 포도가 잘 자라지 않은 토양으로 포도대신 사과를 재배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사과를 발효시킨 사과주(시드르)가 태어나게 되었고, 그 유명한 칼바도스는 시드르를 좀 더 증류시킨 알콜 도수가 높은 술이다.




노르망디 지역은 목초지가 많고, 따라서 양과 소등의 목축업이 발달되어 있다. 따라서 치즈와 버터가 유명하다.



 






1. 파리로부터 A13번 고속도로를 달려 우측으로 옹플뢰흐에 진입하고 있다.(최고속도 130km)

 A29도로에 진입하면 드디어 옹플뢰흐에 갈수 있다(이곳을 통해서 노르망디 다리를 건너 르아브르에 갈 수 있다.)















2. 옹플뢰흐에서 바라보면 영국 해협이 보인다.멀리 바라보이는 다리가 노르망디 다리이다.이곳은 바람이 자주 불고 바람의 영향이 상당히 센 곳이라고 한다.그런데 이 다리는 그런 바람에도 끄덕없이 지어졌다고 하니  가히 프랑스의 건축 기술이 대단한 듯 하다.(1995년)















3. 르 아브르에서 해안을 따라가면  그 유명한 에트르타(Etretat),코끼리 해안이 있다.(아래 사진)














4. 옹플뢰흐에서 볼수 있는 간판(Cidre/사이다의 (탄산 사과주)














5. 옹플뢰흐 항구마을 도시 전경 (위로 올라가면 생트 카드린 성당이 있다.)













6. 옹플뢰흐의 옛항구/지금은 요트 정박지로 사용되고 있으며,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의 대상이 되었던 곳이고,지금도 수많은 화가들이 캔버스를 걸어두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곳을 찾는 이유는 다른 구경거리보다는 부댕과 사틴의 고향 그리고 옛항구의 그림같은 풍경을 담기 위해서이다.

사진 왼편으로는 즐비하게 레스토랑과 카페가 들어서 있다.













7. 옹플뢰흐의 옛 항구

이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하룻밤을 보내며,아침 이른 새벽에 이곳을 거닐고 싶다.조금만 더 내려가면 영국해협과 노르망디 다리가 절경을 보여준다.따스한 봄바람을 가슴에 안고,바다 끝자락에 서서 사랑을 맹세하고 싶다.



이곳을 거쳐 몽생미셀(2시간거리)-생말로(40분거리/브르타뉴)을 갈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여행은 역시 이곳의 그림처럼 그림을 그리는듯 아름답고 행복하리라...,

이른 새벽에 시린 가슴으로 바닷바람과 이 아름다운 옛항구에 앉아 속삭이는 바람처럼 영원히 그 사랑에 머물고 싶다.













8.생테티엔 교회와 해양 박물관이 보인다.(오른편 건물과 십자가 탑 사진)













9. 옹플뢰흐 마을 중심지....,

저 멀리 보이는 공원 앞 하얀 건물의 호텔을 예약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하루를 머물고 싶다.

파란 하늘과 구름은 어찌도 이리 아름다운지...,














10. 이른 새벽에 가벼운 가디건을 하나 걸치고,사랑하는 사람의 허리를 감싸고 바다로 나간다.



사랑 할수 있을때 사랑하라.

시간은 사랑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사랑은 가슴에서 피어 눈물로 자라나는 영혼의 눈뜸이고,영혼의 깨어남이다.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

이 말하나를 위해 수천 킬로를 달려와 고백하게 하는게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내가 가진 전부를 다 주어도 좋을때, 사랑한다고 말하라.

 

사랑은 아무에게나 함부로 다가서는 너의 입맞춤으로 오는게 아니리라.

가슴으로 말하고 입술로 그사람의 마음을 달래어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게 사랑이리라.








다음 2,3편의 여행지는 기대해도 좋을 몽생미셀과 생말로이다.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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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 제게 늘 말합니다.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글쎄...,


혼자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것 같습니다.



변화를 좋아해서,한 곳에 안주해 본적이 없는 것이겠죠.
그래서 그렇게 수많은 나라를 다니며 역마살이 끼었나 봅니다.


제가 새로운 변화는 좋아하지만 그래도 좋아하지 않는게 있습니다.


변함입니다...,





저는 변화는 좋아하지만 변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잠이오질 않아서 늦은 밤 아파트 정원에 내려가 산책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내가 사는 집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모두가 잠든 밤 수많은 집들의 불이 다꺼지고 어두운데...,
내 방에는 아직도 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남을 위해 깨어 있다는 것은 세상에 아름다운 일 입니다.




누군가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은 세상을 아름답게 합니다.


누군가 늦은밤 멋진 글을 쓰는것은 이 세상을 멋지게 포장하고 만들어가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변함없이 오늘도 이렇게 마음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나는 아직도 변화 중에 있고,오늘도 새롭게 변화하며 늘 배우고 있습니다.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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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중심의 삶이 중요한 이유-


내가 20대에 성공할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은 풍요의 심리를 가졌기 때문이였다.다시말해 이 세상에는 내 꿈을 실현시켜줄만큼 충분한 천연자원과 인적자원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성공한다고 해서 다른사람이 실패해야 되거나,다른사람이 성공한다고 해서  나의 성공이 실패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시간이 흐르고 빠른 속도로 가치가 이동하고 천연적으로 많던 자원이 고갈되면서 모든 물질이 가격 우위의 경쟁으로 변해 버렸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내것을 차지하거나 아니면 놓치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모든 생각의 초점을 맞추다보니,우리는 우리의 파이조각만을 확보하기 위해 내 영역만 지켜야 한다고 하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과 생활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즉  나의 풍요를 차지하기 위해 마음의 부족 심리를 가지게 되어 버린것이다.부족심리를 가진 사람은 무조건 모든것을 이기느냐 지느냐,가지느냐 못가지느냐의 제로섬 게임을 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모든것이 적대적이고 경쟁적인 특성을 가지게 되는것이다.










우리는 풍요의 심리와 부족의 심리를 한번씩은 경험한다.우리가 풍요의 심리를 가졌을때에는 다른사람을 신뢰하고,개방적이되며,베풀며 이웃이나 경쟁자와 함께 경쟁이 아닌 서로 상생할 방법을 추구한다.



하지만 부족의 심리를 가졌을때에는 다른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고,비교하게되며,경쟁적 심리로 인해서 열등감을 느끼고,이웃이나 경쟁자를 적대시하며,나눔은 곧 자기의 손해요.삶의 위협이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일에 원칙이 중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나와 남 모두가 모든일을 원칙대로 했을때에는 경쟁속에서도 자기 아닌 다른사람을 바라볼수 있으며,자기손해나 자기 삶에 불이익 올거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가 풍요의 심리를 갖게 된다.










우리 모두가 서로 나보다 남을 소중히 여기고,남의 부족을 채워주고,성공으로 인도하고자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나와 너 즉 우리 서로의 나눔으로 인해 서로가 모두 성공과 행복한 삶을 추구할수 있는것이다.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은 풍요의 심리를 갖고 있다.풍요 심리를 갖기 위한 6가지 방법을 정리해 본다.


1.원칙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즉 사각의 링에서 싸우듯이 지켜야 할 룰과 원칙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는 말이다.뒷골목에서 뒤통수치는 그런 싸움은 결국 자신도 언젠가는 뒤통수를 맞게되며 이는 결국 사회에 불신과 부조리와 부도덕과 불화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2.감성적으로 살고,문명의 이기보다는 자연에서 풍요한것을 찾아야 한다.


인터넷이 발달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풍요속에 빈곤한자가 되어버렸다.스스로 공부하거나,책을 읽을 시간을 포기하고,인터넷 검색으로 생각없이 싼 지식을 구하고 마는것이다.결국 머리속에 지식은 있는것 같으나 자기것이 아닌 남의것을 자기것으로 오인하고,스스로 지식이 충분하고,사회에서 충분한 교양과 인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3.심신을 단련시켜야 한다.


다시말해서 자신의 톱날은 자신 스스로 만들라는 말이다.초코렛 복근이나,남에게 보이기 위한 수련보다 더 올바른 정신과 바른 육체적 건강을 가지라는 말이다.


4.아무도 모르게 봉사하는 연습을 한다.


내가 남들보다 좀 더 많은것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으로 봉사를 한다.금전적 기부도 중요하지만 몸으로 마음으로 봉사하는게 더욱 더 아름다운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수 있다.우리가 이 세상에 이 지구에 돈으로  환원해서 살릴것은 그리 많지 않다.


5.모두를 용서하는 마음을 가진다.


내 자신에게도 각박하게 하지않고 남에게도 베푸는 배려와 여유를 갖는다.


6.사회와 소외된 이웃,친구,동료의 아픔이나 문제를 함께 나누며 함께 고민한다.



-그리운것이 어디 그대뿐이겠는가?의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스티븐 코비의 원칙중심의 리더쉽을 읽고서 쓴 글입니다.)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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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죽음

여행지&스토리 2014. 4. 3. 06:00


Time is fleeting and Nobody lives forever.

시간은 흘러간다.아무도 영원히 살 수는 없다.



일요일이면 산책을 하면서 Porte d'Orleans 집 근처의 공동 묘지를 찾아간다.


수많은 모양의 묘석 그리고 수많은 사연을 담은 묘비명들이 즐비하다.

가진자나 못가진자나 같은 자리에 하늘을 보고 누워있다.





삶과 죽음은 종이 한장의 앞면과 뒷면같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색으로 그려진 앞면 그림이 현재의 우리의 삶이라면 죽음은 그 앞면이 뒷면으로 뒤 바뀐것과 같다.



죽음은 뒤 바뀐 앞면의 종이에 그린 그림이 희미하게 투영된듯 보일듯 말듯한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얼마나 열정적으로 열심히 살았냐에 따라 뒷면에 투영되는 그림이 더욱 더 많은 색을 띄고 분명한 색을 나타내 듯 수많은 사람들의 묘지 또한 그런듯 하다.



많은 것을 세상에 남기고 간 자의 묘지는 더욱 더 많은 색을 남기고 있는듯 했다.





<묘지 담벼락에 오랜 세월이 흘러 그림처럼 그려진 그림이되었다>






The passing years are but fleeting moment...,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는 한순간일뿐...,


세월은 어떠한 것도 그냥 남겨두지 않고, 추억이라는 흔적을 만들어 버린다.





<누군가의 묘지에 누군가 남기고 간 흔적이 눈물처럼 말라있다.>







긴 한숨에 살았을 우리의 인생이 그저 그 한숨 같은 시간이 아니였을까?

똑딱 똑딱, 째깍 째깍 흘러가는 소리만큼 말라가는 시간에 우리가 남길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저 사랑과 사람만이 남는다.




<죽음은 없어진것이 아니고 단지 말라버린 내 삶의 흔적이다.>






부와 명예를 가진 자도 한줌의 재가 되고,그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자도 한줌의재가 된다.

오늘 하루 무엇을 남기고 사는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무얼 어떻게 남기느냐가 더 중요한다.




오래전 우리집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에 아들을 데리고 부모님의 산소를 찾아갔다.

산소를 가는 중에 나는 아들에게 물었다. 


죽음은 무엇일까?...,





<마른 육신처럼 그렇게 누군가의 묘지에 사랑하는 사람의 장미가 사랑으로 여전히 남아있었다>






아들의 답은 이랬다.(사실은 만화의 명대사이다.)


생물학적 의학적인 죽음은 호흡이 정지되고, 동공이 풀리고 심장이 멎으면 죽는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에서 사라질때에 진짜 죽는것입니다."




우문에 현답을 주었다.아직도 그 말이 귀에 쟁쟁하다.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답을 하고,그런 죽음을 이해할수 있었을까?





<살면서 위안이 되던 십자가는 죽어서는 구원이 된다>






너의 작은 흔적이 아름다운 꽃으로 남아서 

이렇게 나의 가슴에 마른 눈물처럼 너를 기리고 있다.








하늘을 바라보며 십자가를 가슴에 쥐고 누운 그는 살아서도 삶이 슬프듯이 죽어서도 삶이 슬프다.





왜냐면 

그를 생각하는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여전히 아프기 때문이다.

사랑은 영원해서 아름답지만 영원하지 못해서 더 아름다운것은 사람이다. 




<십자가는 영원한 사랑의 상징이다.>








<그의 죽음이 우리에게 영원한 영생을 주었다>






아름다웠던 너를 기억하는 이 세상에 오늘도 해가 뜨고,해가진다.

슬픈 기억속에 너를 생각하며 남은 우리는 오늘도 울고,웃으면서 하루를 보낸다.




그대여! 슬퍼말라.


순서대로 왔다가 순서대로 가는 우리 인생 아니던가...,


너의 삶이 태양보다 더 뜨겁고 이슬보다 더 영롱했으며,

눈물보다 더 진한 감동이라는 이야기 한편을 우리에게 주지 않았는가?




그대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직도 그대를 기억한다.

너는 아직도 그들에게 살아 있음이라...,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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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처럼이란 -



세상에서 멋진 사람이란
오랫동안 한가지를 지켜온 사람을 말한다.


우리가 아는 수많은 위인들은 자기 원칙이라는 스스로의 약속에 철저했고,쉽게 금방 변화되는 사람이 아니였다.


한가지를 끝까지 놓지 않고 지켜 간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신념이나 사상 혹은 친구 그리고 자동차와 같은 어떠한 사물이라도 처음 그 마음 그대로 오랫동안 늘 변함없이 지킨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고 세상에서 지키기 가장 어려운 일중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은 날마다 변화되는 세상에 살기에 자기 입으로 말한 것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게 무척이나 어렵다.










입에서 나온 말은 허공에 흩어지고,담을수 없지 않던가 말이다.
말은 귀로 담는게 아니고,머리로 담는 것도 아니며,오직 감동과 약속이라는 가슴과 마음 그릇에 담는 것이 아니던가!



언제는 사랑한다 해놓고선, 또 언제는 헤여지자고 하는게 사람이고,



어제는 "꼭"이라고 말하면서
내일이면 "혹"이라고 말하는게 사람이더라.



오늘이라는 불확실한 시대를 살면서 내일의 확실한 것을 찾는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고 우스운 존재인가...,











올 때 자기 맘대로 온 사람은 꼭 갈 때도 자기 맘대로 간다.
오지말라고 할 때 온 사람은 갈 때는 대부분 내가 오라고 했던 것처럼 '붙잡지 말라' 하고 간다.



이런 세상과 사람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처음에는 좋다가도 끝내는 나를 슬프게 하고야 말더라.



사람이나 사물이나 자동차나 친구나 오래 된다는 것은 참 좋은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늘 처음처럼"이 좋은 말인 줄 알아서 자기의 좌우명을 삼고,

그것도 모자라 잊지 않겠노라 거실 한가운데 떡하니 그 말을 액자로 걸어두면서도...,


금새 "늘 처음 처럼을"잊어버리고 허공에 날려버린 담아두지 못한 입에서 나온 말처럼

언제 그랬냐는듯 망각으로 사는게 사람 아니던가?











약속이 무엇인가?
약속이란 굳이 약속이라 말하지 않고도 행동으로 지키는 것이 약속이고 신뢰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두 사람이 육체적으로 나누는 연애만이 사랑만은 아니다.


사랑은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 하나가 될 때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한다.



육체적인 사랑은 훗날 원하던 원치 않던 이별 할수가 있다.

하지만 가슴으로 나누고,정신으로 교감하는 사랑은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이다.




입에서 나오는 말로 하는 약속은 약속이 아니고,가슴이 아닌 머리에서 나오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말은 영원히 담아두지 못하고,머리는 영원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약속과사랑이 깨져버렸던가...,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할 것은 평생을 오래도록 함께함이 바로 "늘 처음처럼"이라는 말이다.








"늘 처음처럼이란 오래됨이다"

1+2=3 인줄 알지만 2+1=3 인줄 모르는 사람처럼 하나만 바뀌어도 분간을 못하는 어리석은 욕심으로 살지말자.



사랑은 정열이고,오래됨은 열정이다.

사랑이 한번의 뜨거운 끌림과 설레임이라면 오래됨은 늘 식지않는 평생을  가는 꾸준한 뜨거움을 말한다.



무엇이 다르다고 느껴지는가...,?



파리 시내에서 가끔 자신의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자동차를 운전하는 노신사를 만나면 나는 무작정 그사람이 너무 좋다...,

변치않은 꾸준함에 사랑스럽고,멋져보인다.


모든 새 것은 돈으로 다 살 수 있으나, 오래 된 것은 결코 돈으로만 살 수가 없다.

세상에 오래되어서 좋은 것이 오직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골동품이 될 수 없고,그렇다고 늘 새로울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의 당신,

나의 그대,

나의 사람,

나의 연인은 항상  나의 오래된 사람으로 남아 주길 



처음가지던 그마음 그대로 늘 처음처럼..., 원한다. (원츄ㅋ)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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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직 오늘의 사람입니다.-


아침이면 언제 밤이 올까 싶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밤은 오고 있었습니다.
붙잡을수 있는게 없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던 것입니다.




어둠이 오기전까지 빛이 얼마나 좋은지 알지 못했습니다.

태양이 사라지고,밤이 찾아오면서 그것이 얼마나 귀한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영원할 줄 알았습니다.


그사람이 떠나고 사람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미리 알았다고 해도 그사람이 떠나는것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 때문에 죽을것만 같았습니다.


세상 사는게 허무하고,사람 만나는게 싫었습니다.
어느날 끄덕없이,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위선을 배웠습니다.








어제의 그리움에 눈물이 났습니다.


오늘만 사는 사람에게 또 다른 내일이 있다는 것은 은혜요,감사입니다.
오늘이 또 다시 어제가 되고,내일이 똑같은 오늘이 되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편지를 쓰기 위해서 먼저 인사말을 쓰는것처럼,우리의 인생을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늘 하루가 필요합니다.








어제는 다시 찾을수 없고,내일은 오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그저 오늘뿐입니다.



어제를 잊어버리고,내일을 잃어버린다 하여도 나는 오직 오늘의 사람입니다.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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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깨달음은 언제부터 인가?




옛날 어릴적 내 이야기 하나를 들려 줄께
아주 오래 전 내 어릴적에 어머니가 새 신발을 하나 사주셨어…,


하얀색에 강아지가 그려진 운동화였지.

아침 일찍 학교가는 길에  새로 산 하얀 운동화를 조심스레,,,, 

사실 자랑스레 신고 집을 나섰지.



학교에 도착해서 조심스럽게 새로 산 운동화를 교실 앞 복도에 놓인 신발장에 신발을 넣어야 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발장에 운동화를 넣으려다가 말고 몰래 운동화를 가방에 넣고서 교실에 들어갔어,,,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일탈하는 행동이었지만 

그때는 그것이 잘못이라든가, 해서는 안된다든가 하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단지 소중한 내 신발을 어떻게 지킬것인가만 생각했었어.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소나기기 내렸어,,,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왜 그렇게 갑자기 소나기가 자주 내렸는지 모르겠어








그 순간 내 머리 속이 하얀 운동화처럼 하얗게 백지처럼 되는것 같았어.
어떻게 그 운동화를 젖지 않게 온전히 하얗게 지켜낼 것인가만 생각했어.


그래서 몸을 피하는게 아니라 신발을 숨기기 위해 비를 피해 어느 집 처마 밑을  찾아 한참을 서 있었어.
왼쪽 신발을 다리 뒤로 숨기고 그러다 오른쪽 신발을 닦으면서 숨기고...,


얼마 동안을 그렇게 서 있었는지 몰라…,



그때는 집에 가는 생각보다 신발 생각을 더 많이 했으니까,,, 
길 위에 같이 걸어오던 친구들이 하나 둘씩 보이지 않자 조금 불안해지면서 회색 하늘이 금방이라도  어두워 질것 같았어 




밤이 무섭지 않던 용감한 어린아이였는데,,,

집에 돌아가지 못해서 인지 그날은 무서워지더라구...,



그리고 학교 친구들이 보이지 않아서 일까 외롭기도 했어

외로움이 무서움이 되던 처음 일이였어….,









이내 나는  무서운 결심을 해야 했어비를 맞고 걸어가기로 말야
그래서 숨어있던 처마 밑을 나와서는 조심스레 천천히 걸었어 


사실 뛰어가면 더 젖을 것 같아서 말야…, 

내 걸음과 상관없이 비가오면 이미 젖어버린다는 것도 모르고 말야,,,


그게 내 어린적 순수한 마음의 전부였어…, 




몸은 비에 젖어도 감기 걸릴것 같지 않았는데,,,
신발이 젖으면 내 마음이 감기 걸릴것 같아서 조심스레 걸어갔어. 


그런데 내 의지와 달리 나도 몰래 신발이 어느덧 젖어가고 있었고,

우리집 하얀 백구같던 흰 운동화가 하얀 색깔이 아니더라구...,


마음이 혼란스럽고,금방이라도 울어버릴것만 같은데…,


지금은  어느누구도 날 도와줄 수 없고 나 혼자 집으로 가는 길이니까
내가 스스로 혼자 해결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어


난 주저없이 하얀색 강아지 백구같던  하얀 운동화를 씩씩하게 빗물이 고인 물 웅덩이에 두 발을 모두 집어 넣어 버렸어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것 같았지만…,









근데 그 순간 눈물이 아니라 미소가 입가에 번지는 것을 알았고
회색빛 하늘이 높고 푸르게 청명한 색깔로 바뀌는 순간이였어…,


일순간 마음에 평안과 안식이 찾아왔어

그 백구같은 이쁜 새로 산 하얀 새 신발이 흙물에 묻어 양말까지 다 젖어버리고 

아침에 신고 나올때의 순백의 설록같은 하얀 색은 찾아볼수 없었지만 


그제서야 내가 자유롭고 편안해지는것을 알았어
그러자 비를 즐길 마음이 생기더라구..., 



그때...,

학교가 끝나면 돌아오는 길에 늘 혼자 즐겨 부르던 동요가 생각났어.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라는 동요가 입에서 새어 나왔어...., 







어제 밤 무서운 꿈을 꾸고 눈을 떴는데...,

이 동요가 입에서 불러지더라구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어릴적 이 노래가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어서 내게로 돌아 왔어….,



-그리운 것이 어디 그대뿐이겠는가?의 그리운 그 어린시절 작은 깨달음이 주는 행복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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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길에 마주치는 것은 운명이고 

여행길에 마주치는 것은 선택이다.



혼자 가는 길에 마주치는 것은 그리움이고

같이 가는 길에 마주치는 것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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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리는 저녁 먼 하늘을 바라보니 다가서는 그리운 얼굴하나가 떠오릅니다.

오늘 밤을 환하게 밝히는 촛불같은 그리운 당신의 얼굴입니다. 




어둠이 깔리고 하나 둘 내 기억같은 불이 켜질때 

나는 그대라는 그리움에  돌아가지 못하고 하늘속 하얀 그리운 구름이 되어 숨어 버렸습니다.










                             
몰래 다가오는 사랑 막지못한 죄로 내가 지금 그리움이라는 큰 벌을 받고 있습니다.


막아서지도 붙잡지 못하는 그대라는 그리움 되돌려주고 싶어 

나는 오늘 이 밤의 서러운 몸짓이 되어 그리운 사람의 저녁이 되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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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집 가는 방법을 간략히 소개하면서 마지막으로 모네의 여행을 마칩니다.





혹시 몰라서 행선지를 물을 때를 위해 적어봅니다.


한국사람의 영어식으로 말하면 현지 프랑스사람은 못알아 들을수 있습니다.

모네(Claude Monet)의 지베르니(Geverny)를 불어로 읽으면 지베흐니?






1. 먼저 생나자르(St.Lazare)역에 가서 - 베르농(Vernon) 가는 루앙/Rouen, 르아브르/Le Havre 행 기차를 탑니다.


2. 여러 역을 거쳐 가는 국철 노선입니다.약 40여분을 달리면 베르농이 나옵니다.잘보고 계시다가 이곳 역에서 내리셔야만 합니다.


3. 베르농에 내려서 지하도를 건너 역 밖으로 나갑니다.그러면 역 밖에 기차도착 시간에 맞추어 지베르니 행 셔틀 버스가 대기하고 있습니다.버스표를 구입하시고 버스에 탑승합니다. 그리고 중요한것은 왕복표이니,표를 잘 간직하고 계셔야 올때 다시 타고 오실수 있습니다. 버스 마지막은 8시30분 전후로 끓기니,잘 기억해 두셨다가 버스내리실때 시간표를 미리서 봐 두시기 바랍니다. 버스로 20여분을 가시면 모네의 집 앞에 도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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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정원사진을 올리니 즐감하시기 바랍니다.


모네 그림은 사진 촬영금지로 대신 정원에 아름답게 핀 꽃을 올려드리면서,다음 여행편을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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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모네의 여행.2편-꽃이 되어버린 사람





모네 정원의 가득한 꽃 속에서



나는 


이는 바람처럼 그를 만났습니다. 





가슴에 별이뜨니 꽃이 피


꽃이 지니 가슴에 내 별하나가 떨어졌습니다.









































-모네 정원에서-



청조한 너에게


꽃이 되어버린 너에게



바람은 내가 너에게 보내는 인사가 된다.





바람이 부니


오랫동안 잊혀진 너의 향기가 가슴에 일고


내 마음에는 너의 꽃이 피고 진다.





너의 이름


아름다운 꽃이 되어


오늘밤 내 가슴에 뜨는 별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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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출발하여 세브르(Sevres)를 지나 한 시간 정도를 달려


지베르니의 클라우드 모네의집과 정원을 방문했다.






모네의 여행 제 1편



Impressionism Claude Monet (1840-1926)

인상주의 클라우드 모네 (1840-1926)




<포스팅한 사진들은 지난 5월에 찍은 사진들이다.>








 Porte d'Orleans 집에서 약 80여킬로 되는 한적한 시골 마을 지베르니에  모네의 집과 정원이 있는 있다. 









꽃이 만개하는 봄이라서 그런지 수많은 관광객이 모여들었다.










한참을 줄을 서서 기다리다  모네의 집안으로 들어가는 기회가 주어졌다.










모네의 집과 정원 들어가기 전에 있는 관광객을 위한 상점





























모네의 정원 들어가는 입구/모네의 수련 아틀리에라는 팻말이 보인다.

















모네의 정원에 들어서자 화사한 온갓 꽃들이 만개해 있었으며, 










연못에는 수련꽃이 피어오르지는 않았지만 


물속에 수련 꽃잎이 둥둥 떠다니며 방문객들을 한없은 행복으로 안내 했다. 















오고가는 인파 사이로 온갓 나라의 언어들이 향연을 펼치고 있었으며,

모네라는 작가는 그림을 감상하는 기쁨과



 정원 그리고 연못을 볼수 있는 또다른 자연의 그림을 선물한듯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는 마치 식물원을 방문하듯 허리를 굽히고 연신 접사하는 카메라의 손놀림이 분주해졌다.



그래서 이번 모네의 여행편에서는 모네의 그림의 주된 주제가 되었던 

모네의 정원과 연못의 풍경 그리고 그곳에 만개한 꽃의 사진을 올리려고한다.




모네 여행 1편에 이어 제2편,3편에서는 모네 정원과 연못의 꽃 사진들을 기대 하셔도 좋을듯 합니다.






모네의 집에서 모네의 그림 감상를 자유롭게 하였으나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서,

안타갑게도 그의 작품을 카메라에 담을수 없는 아쉬움이 남았다.




먼저 인상주의 화가 클라우드 모네에 대한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충분한 지식이 없어서 아래의 모네에 대한 설명은 다른 사람의 블로그에서 펴온 글임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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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essionism Claude Monet (1840-1926)

인상주의 클라우드 모네 (1840-1926)




 

'빛은 곧 색채이다' 클라우드 모네 편 - 클로드 모네는 언젠가 맹인으로 태어난 자신이 시력을 되찾았을 때 자기가 본 것을 아무런 선입관없이 있는 그대로 그리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와 같은 경험은 그가 18세때에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던 도중에 일어났는데 그는 "갑자기 눈앞을 덮은 베일이 벗겨지며 화가로서의 나의 운명이 내 앞에 펼쳐졌다"고 회상하고 있다. 상업적인 화가이자 캐리커쳐의 작가로 출발했던 모네는 햇살이 가득하고 물기를 머금은 듯한 노르망디 해안의 풍경을 그리며 유람하다가 일순간에 직접적으로 와 닿는 자연의 인상을 기록하는 인상주의 선두주자로 나서게 된다.

 

런던에서 컨스터블과 터너의 작품을 익힌 모네는 새로운 사조의 중심작이자 그 이름이 유래하게  했던 걸작 <인상 : 해돋이>를 1874년 첫 인상주의 전람회에 출품했다. 이후로  반세기동안 다른 인상주의자들의 작품 세계가 변화를 거듭할때에도 모네는 '빛은 곧 색채라'는 인상주의 신조에 충실했다. 그러나 혁신적인 미술사조를 추종한 그의 무명생활은 비참한 것이었다. 1860-70년대의 모네는 르누아르와 마찬가지로 극심한 가난에 시달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자신의 소유물을 저당잡히며 살았다. 1869년 한 방문객의 기록을 보면 모네는 굶주림에 지쳐 절망에 빠져 있다고 쓰고 있다.

 

그는 같은 처지의 르누아르가 가끔씩 갖다주는 빵으로 겨우 연명해나갔다. 1875년 자신의 친구들에게 경제적인 원조를 구걸하며 다녔는데 졸라에게 쓴 편지를 보면 "집에는 동전 한푼없다 게다가 냄비에는 오늘 먹을 거리도 전혀 없다"고 쓰고 있다. 모네는 수집가들에게 헐값에라도 자신의 그림을 사달라고 애원했으며 빚쟁이들의 손에 넘어가게 될 처지에 놓인 작품 200점을 불태워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1886년부터 상황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뉴욕에서 열린 인상주의 전시회에서 큰 성공을 거둔 모네는 대형 캔버스를 보관할 화실을 세울 만큼의 여유가 생겼다.

 

모네의 강박관념 : 인상주의 신조에 대한 모네의 흔들리지 않는 헌신은 경제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어려움도 수반했다. 그는 빛의 일시적인 반사현상을 정확히 묘사하려는 집념으로 항상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다. 날씨가 아무리 나쁜 날에도 30개의 캔버스를 늘어놓고 빛이 바뀜에 따라 한 캔버스에서 다른 캔버스로 옮기며 그림을 그렸다. 겨울에도 그는 화구를 눈밭 위에 세워 놓고 센강가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빛의 조도가 알맞게 되기를 참을성있게 기다렸다.

 

어느 날은 폭풍우치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바닷가에서 그림을 그려서 몸이 흠뻑 젖기도 했다. 모네는 물을 사랑해 배위에서 죽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그는 캔버스를 고정시킬 수 있도록 바닥이 평평한 배를 구입해 선상화실로 개조해 새벽부터 저녁까지 수많은 그림을 번갈아 그리곤 했다. 어떤 손님은 "그는 포플러 시리즈의 한 작품을 단 7분간만 그렸는데 햇살이 특정 나뭇잎위에 머무는 동안에만 그렸다가 포퓰러 시리즈의 다른 작품으로 옮겨가곤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야외 작업에 대한 모네의 열정은 초기의 <정원에 있는 여인들>을 그린 1866년에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이 캔버스의 높이는 2.5미터가 넘었기때문에 모네는 야외에서 적업을 하기로 결정한 후 도랑을 파서 그림의 아랫부분을 묻어 고정시켰다. 그리고 도르래로 그림을 들었다 내렸다 높이를 조절하면서 완성했다. 그를 방문했던 쿠르베는 모네가 해가 구름을 덮이면 나뭇잎 한 장조차도 그리지 않고 붓을 놓는 것에 놀란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모네의 강박관념은 너무나 지독한 것이어서 자신을 끊임없이 맷돌을 돌리는 짐승의 숙명에 비유할 정도였다. 그의 첫번째 아내가 죽은 침상에서도 모네는 슬퍼하기보다는 죽은 자의 창백한 얼굴의 파랑, 회색, 노란색의 색점들을 모사하려는 충동을 억제할 수 없었다고 한다.

 

모네의 기법 : 모네의 스타일은 일순간에 시각으로 감응한 이미지를 작은 물감 자국으로 캔버스에 그려나가는 것이다. 색조를 달해가며 덧칠하는 전통적인 기법대신 그는 다른 색깔들을 나란히 배열해 진동하는 듯한 효과를 주고 있다. 이러한 '시각적 혼합'방법을 통해 분할된 색채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면서 서로 혼합되어 보인다. 그림자를 묘사할때 모네는 검은색 대신 정반대의 색채인 보색을 사용하고 있다. 1880년에 모네는 물감의 사용법을 바꾸었다. 작은 반잠을 사용하는 대신 그는 자신의 화필을 늘여서 구불구불한 필치를 사용했다.

 

1900-26년 사이에 그려진 수백점의 <수련>연작을 보면 윤관선이 없이 형태와 선이 붓자국으로 뒤섞이도록 하고 있다. 원근법이나 실제적인 이미지가 뚜렷이 제시되지 않은 채 소용돌이치는 색체의 흐릿한 안개 속으로 사라져 있다. 거의 추상에 가까운 이 그림의 주제는 빛속에서 모네가 본 색채 그 자체이다. 시각적 체험, 이것이 모네 그림의 진수이다. 그는 86세로 사람할때까지 이것만을 되풀이 해서 그렸다. 세잔은 그에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네가 가진 것은 오직 눈밖에 없다. 그러나 얼마나 위대한 눈인가"


지베르니(Giverny)와 수련연작 : 1883년 모네는 파리에서 64km떨어진 시골인 지베르니로 이사했다. 이곳에서 모네는 스스로 "나의 가장 아름다운 걸작"이라 칭했던 <수련 연작>을 그리게 된다. 처음 이곳에 이사했을 때 모네는 비오는 날 그림의 소재로 삼을 셈으로 몇 포기의 꽃을 심었다. 그러던 것이 1890년부터 정식으로 정원을 가꾸기 시작해 '처녀림같은 미묘한 색조'를 만들고자 등나무,버드나무,대나무 등을 심기 시작했다. 매일 정원사와가 와서 연못의 잡초와 벌레들을 죽이고 수련을 손질했다. 심지어 수련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고자 매일 수련꽃을 물로 씻었다고 한다. 모네는 자신이 정원 가꾸기와 그림그리기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말할 정도였다.

 

1911년부터 모네는 자신의 정원만을 그리게 된다. 모네는 연못의 크기를 점차 늘렸고 더불어 자신의 작품크기도 늘려 높이 1.8미터 길이 4.2미터로 3폭의 화면을 하나로 만든 작품을 그렸다. 백내장때문에 그의 시력이 점차 약해짐에따라 그가 그린 수련도 갈수록 흐릿해져 마침내 물과 반사광이 혼합되어 형체를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그는 추상주의의 선조격이 되는 새로운 종류의 회화를 탄생시킨 것이다. 모네는 "이 그림의 주제가 나타내고자하는 정수는 매순간마다 변화하는 수면의 반사광이다.수면에 반사되는 하늘 덕분에 빛과 움직의 느낌을 줄 수 있었다"


모네의 약력 소개 - 프랑스화가. 파리 출생. 소년시절을 르아브르에서 보냈으며, 그곳에서 화가 부댕을 만나, 외광(外光)묘사에 대한 초보적인 화법을 배웠다. 19세 때 파리로 가서 아카데미 스위스에 들어가, 피사로와 사귀었다. 2년간 병역을 치르고 1862년 파리로 귀환, 글레르 밑에서 A.르누아르, A.시슬레, F.바지유 등과 사귀며 공부하였다. 초기에는 G.쿠르베와 E.마네의 영향을 받아 인물화를 그렸으나 점차 밝은 야외에서 풍경화를 그렸다. 1870년 프로이센 - 프랑스전쟁 때 런던으로 피신, 이때 J.터너, J.컨스터블 등의 영국 풍경화파의 작품들에 접했다. 이것은 명쾌한 색채표현이란 점에서 커다란 기술적 향상을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1872년 귀국, 파리 근교의 아르장퇴유에 살면서 센 강변의 밝은 풍경을 그려, 인상파양식을 개척하였다. 1874년 파리에서 '화가·조각가·판화가·무명예술가 협회전'을 개최하고 여기에 12점의 작품을 출품하였는데, 출품된 작품 《인상·일출(日出)》이란 작품 제명에서 인상파란 이름이 모네를 중심으로 한 화가집단에 붙여졌다. 이후 1886년까지 8회 계속된 인상파전에 5회에 걸쳐 많은 작품을 출품하여 대표적 지도자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한편 1878년에는 센강변의 베퇴유, 1883년에는 지베르니로 주거를 옮겨 작품을 제작하였고, 만년에는 저택 내 넓은 연못에 떠 있는 연꽃을 그리는 데 몰두하였다.

 

작품은 외광을 받은 자연의 표정을 따라 밝은색을 효과적으로 구사하고, 팔레트위에서 물감을 섞지 않는 대신 '색조의 분할'이나 '원색의 병치(倂置)'를 이행하는 등, 인상파기법의 한 전형을 개척하였다. 자연을 감싼 미묘한 대기의 뉘앙스나 빛을 받고 변화하는 풍경의 순간적 양상을 묘사하려는 그의 작화(作畵)의도는 《루아대성당》 《수련(睡蓮)》 등에서 보듯이 동일주제를 아침·낮·저녁으로 시간에 따라 연작한 태도에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이 밖에 《소풍 The Picnic》 《강 The River》 등의 작품도 유명하며 만년에는 눈병을 앓았다. 1926년 폐암으로 86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어서 계속 포스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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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과 빛

이야기&사진관 2014. 3. 25. 00:16


-야경을 바라보며-


너도 나에게는 빛이다.


야경을 찍기 위해서는 
어둠과 빛,타이밍이 있어야만 한다.


가장 중요한게 하나 더 있다.
흔들림없는 삼각대가 필요하다.


너를 향한 내 마음은 흔들림없는 삼각대처럼 굳건한 기다림으로 영원하다.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본 세상을 그대로 찍을수 있다는 것은 눈이 아니고 사진이 아니며 오직 마음뿐이다.


너는 나의 꿈속에 와서 나의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었고,짧아져 버린 바지처럼 기억이 가물거릴때 고단한 나의 꿈속을 걷는 사람이 되었다.


기억의 짧아짐으로 드러난 시린 발목이 온몸을 차갑게 하지만 나는 하루라도 너를 찾아가지 않은 날이 없었다.


오늘이 마지막 누르는 기억의 셔터가 될지라도 나는 너를 찾아가는 한 줌 빛으로 다가서리라.








1. 빛과 어둠












2. 빛과 흔들림













3. 빛과 출렁임












4. 빛과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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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가 오베르 쉬르 우와즈에서 그린 일부 작품과 오베르 쉬르 우와즈에서 실제 그림의 배경이 된 곳을 비교 합니다.






작품명/까마귀가 나는 밀밭





까마귀 나는 밀밭의 실제 배경이 된 곳이다.










바로 이곳이 두사람이 있는 오베르 거리와 계단이라는 그림을 그린 장소이다.





작품명/두사람이 있는 오베르거리와 계단










라부 여인숙 건물 맞은 편에서 보이는 오베르 시청이다.





작품명/오베르시의 시청이다.










시청 건물을 구경하고 아래로 내려오면  차 다니는 대로 변에 고흐 동상과 공원이 있다.










자드킨 러시아 출신 프랑스 조각가가 조각한 고흐의 동상이다.이젤을 메고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 그 동상이 있다.









고흐 공원 풍경이다.










고흐 동상 뒤편의 하얀집을 배경으로 아래의 하얀집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고흐를 찾아 나선 길에서 마주하는 고흐 흔적의 도로 표지판

그 표지판에는 고흐가 태어났던 네덜란드 ZUNDERT로 가는 도로표지판의 글씨가 선명하다.





"빈센트 반 고흐를 찾다." 마지막 제4편으로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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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찍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진들






파리의 라데팡스











파리의 명물 알렉산드르 3세다(Pont Alexxandre III)















에펠탑을 보면서 달리는 유일한 파리 메트로 4호선












노틀담 성당에서 노틀담과 곱추는 없지만 "노틀담과 가로등"












노틀담과 세느강 그리고 유람선











라데팡스 EDF 프랑스 전력청사



해질녘에 노을이 비추면 바로 환상적이다.

프로포즈할 기회가 또 온다면 라데팡스의 노을에서 할것이다.ㅋ











드뎌 라데팡스 신개선문


갑자기 한국의 전통연이 생각나더라...,











회색조의 다른 모습으로 신개선문


이 계단 위에 무릅을 꿇고 프로포즈와 함께 그녀의 손에 청혼반지를 주고 싶다.












여수의 해질녁의 붉은 노을 / 그리움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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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오는 소식은 꽃으로 부터오고,


나는 그리움으로부터 온다.







베르사유 궁전뜰에 있는 조각상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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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표적인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를 만나러 오베르 쉬르 우와즈에 간다.



사실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의 Zundert에서 출생했으며,1890년 7월 29일 이곳 Auvers-sur-Oise에서 사망했으며 오늘 찾아가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 sur Oise)는 그가 권총으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약 70여일을 살았던 곳으로 그의 삶 중에 의미가 깊은곳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램브란트이후로 가장 뛰어난 네덜란드 화가로 손꼽히며,세느, 고갱과 더불어 네덜란드의 화가이자 드로잉맨으로 가장 뛰어난 후기 인상파 화가이다. 그는 이곳에서 80여점의 귀한 작품을 남겼다.




<고흐의 작품 L’eglise d’Auvers-Sur-Oise를 그린 실제의 교회이다.>








오르세 미술관에서도 다른 곳에 절대 빌려주지 않는 작품 중 하나이다. 




<작품 L’eglise d’Auvers-Sur-Oise>






간략히 그의 삶을 들어다 본다.아버지는 신교도의 목사였고, 고흐는 성직자로서 교육받았으며, 1878년 그의 학업을 버리고 예비 목사로서 일하기 위해 벨기에 있는 the grim Borinage 주의 가난한 갱부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는 Borinage에 남았고, 가난과 정신적 병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그는 자신의 세계를 포기했고, 그의 학업을 포기했던 정열과 열정의 사람..., 빈센트 반 고흐.





그가 그림이라는 예술의 세계을 발견했을 때 그것은 일종의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것의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그의 이러한 뜨거운 혼자만의 열정으로 그는 새로운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그것은 그에게 비참한 가난, 영양 실조등으로 고통받게 했으며, 이러한 불굴의 열정이 그의 삶 10년 중에 약 800개의 그림과 데생 작품을 그리게 했는지 모르겠다. 그는 그림을 전혀 팔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했으며, 환각증세 그리고 신경성의 질환으로 고생했다. 



Arles에서 그는 고갱을 만났으며 그러나 그 둘의 싸움의 결과로 그 유명한 사건인 고흐가 자신의 왼쪽 귀를 자름으로 인해 그는 더욱 고통받게 된다. 1889년 5월 그는 자신의 요구에 따라 Arles 가까운 St Ray의 정신요양소로 갔다.  



그리고 생의 마감을 예감한듯 그는 그곳에서 StarryNight라는 세계적인 그림과 150개의 데생을 만들었습니다.







<그가 죽기 직전까지 머물던  Auvers-Sur-Oise에 있는 라부 여인숙>










<두사람이 있는 오베르의 거리와 계단이라는 작품의 배경이 된 곳> 









그는 살아서 오직 한개의 작품을 팔았으며,그래서 그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그의 예술 세계는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도비그니 미술관/관광 정보 센터>










<열정과 정열의 사나이 빈센트 반 고흐/러시아 조각가 자드킨의 작품/조각에서도 그가 얼마나 가난했는지를 엿볼수 있다.>







1890년 7월 29일 그는 권총으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삶의 마지막 70일동안 70개의 유화작품을 남긴 Auvers-Sur-Oise의 그가 머물던 여인숙 레스토랑 들어가는 길 지금은 그의 머물던 숙소가 관광객을 맞이한다.






<고흐가 머물던 방과 침대를 구경할수 있다.시청각자료실과 선물코너 그리고 고흐의 방이 있다.>









<고흐 동생이자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드르 반 고호와 빈센트 반고흐가  묻힌 무덤 올라가는 길 >









<언제나 함께 하길 원하던 두형제의 무덤 /그의 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묘지>








<동생 테오드르 반 고흐 묘지/ 일년 뒤에 형을 따라간 동생>









이곳은 Auvers-sur-Oise는19세기 유명화가들인 세잔,도비니,파시로등도 사랑했던 마을이다.



<오베르쉬르 우아즈 시청 건물>


 


"빈센트 반 고흐를 찾다" 2편,3편,4편으로 나누어 올려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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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을 맞고 걷는다는것은  옛날에는 도선생을 두고 한말이다.
현대의 이슬을 맞고 걷는다는 것은 부지런함과 사색의 즐거움을 맛보는 사람들을 말한다.


1주일 7일=168시간=10,080분=604,800초
일주일,이렇게 많은 시간중에서 사색하는 시간이 없다면 인생은 정말 무의미 할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사색하는 일이다.
그리움은 나와 그 사람 혹은 그 어떤것을 위하는 일이지만,사색이란 오로지 나만을 위한 일이다.









그런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책상에 앉아있거나..., 
공원을 가거나 해야한다.


여러 방법 중 어떠한 방법을 갖는냐는 사색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멋진 숲과 사람들과 호수와 공원이 있다면 어떨까...,


내가 가진 시간 중 일부를 그 곳에서 사용한다면 행복감으로 가는 시간이 아쉽지 않을듯 싶다.










집 근처에서 가까운 공원엘 간다.그 공원의 이름은 몽수리이다.
그곳에 가면 한아름이 넘는 나무들과 지저귀는 새들의 합창과 마주보는 시테 유니버시테 기숙사의 젊음을 나눌수가 있다.


동화속 풍경같은 구불구불한 산책로 그리고 팔뚝만한 잉어와 오리가 거닐듯 살고 있는 커다란 호수,

가냘프게 피어난 바람속의 꽃 나의 열정을 닮은 나의 아름다운 연인...,빨간색 고꼬디아 꽃..., 









몽수리공원(Parc Montsouris)sms 1853부터 30년간 대대적인 파리 개조사업을 벌여 지금의 파리가 된것이다.

그전에는 비가오면 진흙투성의 수렁이 생기고 전염병이 창궐하는 지저분한 도시였다고 한다.



19세기 중반 이후 오스만은 파리 개조사업시에 사용할 돌이 필요했다.그래서 이곳 몽수리의 돌을 채석해서 파리의 수많은 도로와 집을 지었고,그때에 돌을 파낸 자리는 황량하게 큰 구덩이로 남게 되었다.



그 황량한 터에 공원이 생기게 되었고,그 이름이 바로 몽수리이다.





< 몽수리 공원 들어가는 입구 빨간 까페에 당신과 함께 나누는 커피가 그립다>









파리 동서남북으로 녹지를 계획하였던 오스만은 그결과 뱅쎈숲과 블로뉴숲,몽수리공원,뷔트쇼몽공원을 만들었다.

사실 몽수리와 뷔트쇼몽은 프랑스식이 아닌 영국식 조경이다.



쉽게 말한다면 프랑스의 도로 건설은 4면의 무수한 직각들로 도시를 계획했다.

그런 직선의 길 가운데 지어진 공원내 산책로는 모두다 꼬불꼬불하게 자연의 그대로를 살려 곡선으로 조성했다는 말이다.





<사랑을 나누는 한쌍의 하트 모가지를 한 아름다운 연인>








그래서 몽수리하면 화가 앙리 루소를 말한다.그는 이런 풍경에 반해 이곳 그림을 자주 그렸다고 한다.

그의 대표적인 몽수리 공원의 산책의 주제는 나무이다.이곳에는 젊음과 황혼이 공존하는 세계이다.



몽수리 공원이 위치한 곳에 시테 유니버시테라는 세계의 대학생들을 위한 기숙사가 있다.

일요일이면 내 발길을 옮기게 하는 곳....,




<몽수리에서 바라본 시테유니버시테 세계 대학생 기숙사>







내 뺨을 스쳐가는 바람....,

머리를 조금 길었다면 더 좋을 바람과의 춤을 추는 흩트러짐,


그리고 아름다운 곳의 새소리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헤드폰에서 흘러나온다면...,

난 오래 전 그 모습 그대로가 좋은  젊음의 연인으로 되돌아가고만 싶다.





가슴에 그리운 사람을 꺼내 바람에 햇볕에 내놓고 세상속에서 혼자만의 사랑으로 그리워도하고,

오염된 내 사상을 씻어내고 부는 바람에 입맞추고, 그렇게 그립고 아름다운 사연과 생각을 그곳 벤치에 두고 돌아온다...,




<나의 쉼터,이 벤치에 두고온 많은 그리운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 안부가 묻고 싶다>









나의 돌아갈수 없는 젊음과 나의 아름다운 연인들의 그리움들을 모아서 나는 한걸음 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처럼...,



그 책을 다시 읽고 같은 감동으로 가슴이 젖는다면...,

한잔의 차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캐서린(캐디)는 아닐지라도...,마땅히 나는 그때로 다시 돌아가리라...,




<내가 사색하며 글을 쓰기를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 오늘도 그리운 사연을 적어본다.>









<시테유니버시테 기숙사 입구>










<시테유니버시테 관리 본관-도서관 관리 사무실 공연장 연주실 회의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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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 슈발의 퐁텐블로(Fontainebleau)


파리의 남동쪽 65킬로에 위치한 베르사이유 궁의 모델격이 절대 원조..., 퐁텐블로를 간다.


프랑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중세 카페 왕조에서부터 나폴레옹 3세에 이르는 역대왕들의 진솔한 삶이 숨쉬는 은밀한 은신처.


정치를 떠나 애첩들과의 은밀한 밀애를 누르는 정말 은신처...,


페리 슈발이란

말발굽 모양의 독툭한 성을 들어가기 위한 계단의 모양을 따서 그리 이름 지었다.

우아하고 세련되고,그래서 일까..., 로맨스의 영화 속에 등장하기도 한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2만 5000핵타르의 넓은 숲,사실 성의 앞마당이지만...,


사실 이 성은 짬뽕이다.

12-15세기에 걸쳐 지어짐으로 인해 다양한 건축 양식이 Mixed 되어서 딱히 어느 양식이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지금 이 성의 모습은 프랑수아 1세때 완성됨으로 인해 그의 이름 첫글자를 따서 건물 외관에 F가 상징적으로 새겨져 있는 르네상스 풍의 건물이다.


미리 알고 떡하니, F로 찜을 한  덕에 정권이 바꿔어도 개조없이 성을 지킬수 있었다고 한다.

나폴레옹 1세가 가장 사랑한 성이기도 하다.






백마의 안뜰에서 바라본 페리슈발(Escalier du Fer-a-Cheval)


























성을 둘러본 후에 산책하기 좋은 사냥터로 쓰인 성의 앞마당 격인 숲을 가보는것도 좋다.

하지만 겁나게 다리가 아플꺼라는것 그리고 돌아오려면 가끔 왜 이리 멀리 왔나 짜증이 날꺼라는것만 빼면 걍 좋다.











여친이나 남친이 있다면 그정도는 감수 할수 있으니,꼭 연인들이 가시길...,

동성끼리가면 오해받거나 말거나지만 그걸 떠나 같은 종족끼리는 재미가 없자나요ㅋㅋㅋㅋ




페리 슈발 계단은 앙리 2세때 장 앙드루에 뒤 세르소가 1634년 만들었으며 이 성 안에는 거대한 운하와 디안 정원이 있다.




(Jardin de Diane)

















아래 사진은 

나폴레옹이 엘바섬으로유배를 갈때에 근위병들을 새워 놓고 이별사를 고했던 일명"이별의 광장"입니다.






<백마의 안뜰이지요.나폴레옹을 마지막 기억하는 이별의 광장>









이곳 계단에서 백마의 뜰을 바라보자니...,

제가 나폴레옹이 된듯 합니다.유배가는것만 빼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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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가볍게 가디건 하나를 걸치고,썬글라스에 모자를 눌러 쓰고  센느 강 바람을 만끽한다.

지도 한장과 커피값 정도의 약간의 돈 그리고 볼륨을 높인 나의 애마를 타고 센느 강변길을 달린다.



끈끈한 피가 나를 붙잡는 듯...,피하고 싶은 길에 들어섰다.

사실은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길이다.나의 사상을 닮아서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멀리서 가까운듯 에펠탑이 보이고,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알렉산드르 3세 다리가 보인다.

샹제리제와 루부르 박물관을 갈수 있으며,멀리 개선문과 라데팡스 신 개선문이 보인다.

오르세이 미술관을 지나면 노트르담이 보이겠지...,



이곳은 자동차가 지날 때에 드르륵 드르륵하고 소리를 낸다.

피흘림의 외침같은 소리이다. 



작은 진동으로 차도 몸도 떨리면서 내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피빛 작은 속삭임들이 전해져 온다.


싫지 않은 느낌으로 늘 편하게만 살다보니,안락한게 좋다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죽은 정신과 사상을 깨우고 있다. 




지금 내가 달리는 도로의 드르륵 거리는 소리는 한때 바스티유 감옥의 벽으로 사용된 돌이 도로에 깔린 소리이다.


자유와 평등을 억압하고 속박했던 감옥을 부수고 그곳의 벽,세상과 단절된 상징이 된 감옥의 벽을 쌓던 돌을 도로 바닥에 깔고서 그들은 아직까지도 그 정신을 계승하고,어쩌면 지금도 그들은 그 혁명정신으로 세상의 자유와 평등을 억압하는 모든 것들에 저항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자유와 평등을 얻기 위한 그들의 피흘림들...,


파리의 중심지인 샹젤리제와 르부르 박물관의 중간쯤에 혁명의 광장이 있다.

지금 말하는 이곳이 콩코르드 광장이다.(Place de la Concorde/콩코르드는 화합이라는 불어이다.)




지금 보시는 오벨리스크와 분수대가 서 있는 곳이 바로 프랑스 대 혁명시절 단두대가 서있던 피흘림의 역사의 현장이다.







혁명가이자 정치가이며 인권변호사이기도 했던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의 피흘림이 서린 곳이다.

혁명 중에 민중의 손에 의해 정치가가 된 그는 왕과 귀족을 끌어내어 처형하는 역사의 민중의 봉기 속에 함께 했다.



진보와 보수가 싸우는 격렬한 역사의 정치의 현장 속에 있던 그도 결국은 똑같은 방법으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갔다.

하지만 민중를 위한 민주를 위한 그의 이상이 고스란히 피로 물들었기에...,


역사는 루이 15세의 광장으로 불리던 이곳을 루이 16세 때 혁명의 광장으로 이름을 바뀌면서 왕은 이곳에서 처형을 당했으며,

결국 그의 목을 자른 로베스피에르도 이곳에서 똑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그래서 프랑스는 대혁명의 그 역사를 훗날, 아니 바로 지금 이곳을 화합을 뜻하는 콩코르드 광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바뀐 역사의 이름으로 왕족과 귀족을 몰아내고,무수한 보수와 진보의 피흘림을 쏟아내고는 나중에서야 결국 역사는 화합이란 이름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 했다.


이곳을 지나는 내 귀에 그들이 외치던 함성같은 피흘림의 소리가 드르륵 드르륵하고 들린다.

더욱 더 엑셀레이터를 밟아서 그 함성을 더욱 더 크게 하고 싶었다.














저멀리 개선문이 보인다..., 그 개선문 속으로 또 보이는 신 개선문이 보인다.

프랑스는 역사 위에 진실를 쓰던 피흘림을 소중하게 간직한 고귀함을 내세우고 자랑할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는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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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세기의 지성을 만났다.


돌아오는 길에 그들의 사랑함과 그들의 지성이 바람처럼 나를 따라 다녔다.



계약결혼'이라는 단어의 대명사

평생 연인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한때 부는 바람으로 빗나간 사랑이 되어 계약이 깨질뻔 했지만..,


영원히 결혼을 포기하고 평생을 연인으로 남아 사랑 하나로 끝까지 열애하다 간 바람처럼 자유하던 그들...,

결혼보다 더한 50년을 계약이라는 약속 아닌 약속을 평생 지키다 간 약속의 연인...,


오늘은 그냥 그렇게 그들이 그립다.

그들의 앞에서..., 

잠시 머물다...,


맑은 하늘에 눈물같은 비가 뚝뚝 떨어진다. 

아직도 내게 이런 눈물이 있었는가?


그들의 사랑으로 나의 가슴에 막힌 담이 허물어지듯이 그렇게 눈물이 난다.


차가운 그들의 묘비석에 붉은 입맞춤의 묘비명을 쓰고 간 사람들의 붉은 입술 자국들....,



왜 나를 아프게하는지...,

나의 온몸이 짜릿하며,머리카락이 쭈삣하고 솟는다.

밤이면 그들은 손을 잡고 이곳을 거닐고 있지는 않을까?...,








<몽파르나스 묘지의 입구에 세워진 묘지 배치도이다.>







나의 시적 감성을 준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인간의 영과 육의 이중성을 예리하게 파헤친 "악의 꽃"

퇴폐적인 미와 증오 그리고 인간적 고뇌,거룩한 미의 예찬,마음의 갈등,육체의 쾌락과 정신적 지옥을 다 껴안은 시인...,



그가 부르던 "블랙 비너스,여인 중의 여인"인 아이티 출신의 무용수 "잔 뒤발",그녀는 나의 보들레르에게 상상력의 샘이요,

폭풍같은 사랑으로 인해 악의 꽃으로 나타났다.




그는 나를 그에게서 한참 동안을  머물게 했다.무슨 말이라도 하려는듯이...,




<보들레르의 묘>







저 멀리 새까만 유리건물 몽파르나스 타워가 보인다.


세상과 묘지는 단절이 아니고,죽음과 태어남은 이질감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생명의 밑바닥은 죽음으로부터 시작되고,죽음은 또다른 만남으로 가는 아름다운 손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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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여행하기 위해...,

제일 먼저 노트르담 성당(Cathedrale Notre-Dame de Paris)으로 간다.


아름다운 노트르담 대 성당과 시테섬을 구경하기 위함도 있지만...,


사실 파리에서 여행의 시작과 모든 시작의 중심점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곳으로부터 세느강을 따라가면 오르세이-샹제리제-에펠탑을 갈수 있다.


실제로 이곳에서 부터 여행을 시작하여 세느강을 따라 모든 여행을 시작하는게 겹치지 않는 가장 좋은 여행이 된다는 것이다.




파리여행의 시작점이요 출발점,바로 포앵제로(POINT ZERO)이 이곳에 있다.

파리의 중심,바로 이곳이 다른 어떤 곳까지의 거리의 측정의 기준점이라는 말이다.


프랑스의 어느 곳에서든지 시작점이 되는 거리 측정의 제로(0),즉 모든 시작점이요,출발점이 바로 이곳이다. 






가로등과 노트르담 대성당이 아름다운 짝을 이룬다.








포앵 제로(Point Zero)

이곳을 밟으면 파리에 다시 올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 사랑하는 그 사람과 영원한 이별이 없이 사랑하고 싶다면 꼭 이곳을 밟아 보시라...,







노트르담 대성당 앞 광장에 모인 수많은 나라의 수많은 인파들...,

이들이 지금 이곳에 있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빅토르 위고(Victor Hugo) 때문이다.


파리 대혁명으로 크게 파손되어,사라질 위기에 처한 성당이 오늘날까지 이렇게 아름다운 파리의 시작점이 되는 것은,

그의 작품 "파리의 노트르담"이라는 소설 때문이다.


이 소설로 인해서 성당 복원의 지지 여론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예술가들은 존경받고,추앙받아 마땅하다.

자기의 열정을 세상을 위해 불사르지 않는가 말이다.



나의 사랑도 단 한사람에게 존경받고,추앙받고 싶다. 영원함으로 말이다.








850은 무엇일까?

아시는 분을 위해서 알려주지 말까...,

하지만 난 부드럽고,친절한 남자이다.ㅋ


2013-1163=850

1163년 초석을 세웠으니,850년이 되었다는 말이다.



완성되기까지의 시간은 얼마인지 아는가?


무려...,

초석을 놓고 170여 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프랑스가 대단하고 파리가 영원토록 사랑을 받는것은 오래된 역사와 예술을 지킬 줄 아는 힘 과 노력이다.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기괴한 석상들이 노트르담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의 보호 아래에 오늘 나는 노트르담을 가슴에 안고 돌아 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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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이면 몇번씩 출장길에 혹은 여행으로 파리를 찾는 친구나 지인들이 있어서 늦은 시간 자주 파리의 샤를드골 공항을 나간다.



그런데 아주 고약하게도 공항으로 가는 파리의 외곽 순환도로인 빼리빼리크는 구간 구간마다 최고 속도가 다르다 보니 듬성 등성하게 이어진 최고 속도 70-90 그리고 110킬로 구간의 빼리빼리크(Peripherique/)를 달리다 보면 매달 한 두건씩 과속 딱지가 날라온다.


물론 이 모든것은 누구를 탓하지 못할 과속하는 내 탓이리라.



조명의 나라...,

원자력으로 전기를 팡팡 만들어 대는 나라? 가 야간의 도로의 조명은 어찌나 어두운지 노안이 왔나 착각하며 눈을 비벼대고 달려야만 한다.(실제 노안일수도 있다 ㅋ)



프랑스는 밤에 도로의 조명이 한국처럼 밝지가 않다.

지방으로 나가는 고속도로나 지방 국도는 정말 한치 앞이 안 보일 때가 있다.


무인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긴 하지만 그리 많지는 않다.주로 이동식으로 빼리빼리크(Peripherique/ 파리의 외곽을 감싸는 파리의 심장같은 도로)를 지나는 다리 위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찍어대니...,



귀신 곡하게 정속으로만 달리던가...,

아니면 귀신 곡할 노릇이네 하며...,


카메라가 내 차에 달렸나 하고 위안을 받던가는 모두 나의 몫이다.


벌금 고지서를 받고 2주안에 (45유로)벌칙금을 안내면 두배,세배로 계속 베팅?ㅋ 이 된다.

진짜 강심장 배짱 아니면 안낼수가 없다.고금리 고리대금업자 같은 방법이다.



2002년 한국의 월드컵이 열리던 해 포드 몬데오 디젤을 샀다.

그리고 5년 뒤 그보다 작은 2007년 시트로앵 C4 Exclusive를 산지가 7년이 되었다.



파리에서는 차가 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았다.물론 호불호다.

큰차가 좋으면 큰것을 타는것이지만 나는 아내랑 같이 차를 쓸 요량으로 작은 차를 샀다.


작은 공간에 주차하기 쉽고,경제성 있고 두루두루 실용적으로 사는게 유럽 특히 프랑스 방식이다.


근데 문제는 아내는 지금까지 운전을 안한다는 것이다.


여자는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를 섬기고,결혼해서는 남편을 섬기고,나이가 들어서는 아들을 섬긴다나? ㅋ

내가 운전 안해주면 이제는 아이들을 시킬꺼란다.ㅋ 


아무튼...,ㅋ








아무튼 차를 가지고 다니는 것도 스트레스다.
언제 또 딱지가 날아올지 모르니까 말이다...,달리는게 겁나게 겁나는 드라이버이다.


그래서 4월 초에 질주 본능을 떨쳐버릴 왕복 1,000km(왕복 운전만 10시간)의 당일치기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그 여행의 코스가 프랑스에서 서부 해안에서 영국해협을 보며 달리는 
파리-혼플레르-몽생미셜-생말로(Paris-Honfleur-Mont saint michel-Saint malo)코스이다.



< 총각같은 사진-총각이 아니다는 말을 요로케 한다.ㅋ  >





아침 일찍 집에서 출발하여 혼플레르를 두시간에 찍고(점심)-몽생미셀을 보고-생말로를 가서(저녁)-돌아오는 길에 몽생미셀 야경을 보고 오면 파리에는 새벽 1-2시에 도착할수 있다.


물론 1박을 하면 좋겠지만..., 
미국에서 처럼 라스베가스 가기위해 하루 종일 운전하던 그때의 재미도 있어서 좋다.



어제는 90킬로 구간을 95킬로로 달렸다고 또 딱지가 날아왔다.
현관의 편지함을 열어보기가 겁이 난다.

그리고 귀에 쟁쟁한 여친의 "왜 맨날 자기만 찍혀?!"하는 소리에 놀라는 나를 보면서 맥없이 엘리베이터를 내렸다.



프랑스는 모든 것에서 여유있는 그들에게도 생명을 지키는 것에는 양보와 여유가 없다.

정해진 규정속도에서 1킬로만 넘어도 과속이다.
딱지 떼여서 화가 나지만 그래도 이게 제대로 된 원칙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나라도 네비가 있다.하지만 네비가 규정속도는 알려주어도 과속 카메라가 있다고 위치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이렇게 이 나라는 한국과 다른 것이 많다.나는 이것을 두나라간의 문화의 차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누가 국민을 더 위하는 행정인지는 생명을 지키는 행정인지는 말안해도 아는것 아닌가...,




< 편도  약 460km의 전체 구간 >






< 약 200킬로/2시간 30분 이상의 파리-혼플레르 구간>






< 약 260킬로/2시간30분 정도의 혼플레르-몽생미셸 구간>






< 약 60킬로/1시간 정도의 몽생미셸-생말로구간>




왕복으로는 총 대략 900km정도의 빠틋한 당일치기 여행/멋진 사진은 차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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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보지 못한 사람을 두고서 

그저 그리워만 하고 산다면 그것은 그리움을 그대로 묻어두고 사는 일이 됩니다.


오랫동안 그리워만 하면 그리움으로 남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안보고 지냄으로 기억이 흐려지거나 

눈에서 멀어짐으로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것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그리움은 우리의 의지대로 마음대로 없앨수 있거나 지울수 있는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그리움은 이런 것입니다.

 

"바람이 방금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가도,

 바람은 날 만나기 위해서 저멀리 우주로부터 수천 광년을 지나 나를 찾아왔다"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리움은 인연과 같습니다.

내 마음대로 치우거나 정리하거나 싫다고 아무렇게나 내동댕이 칠수 있는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움은 

사랑하는 사람의 퇴근 시간이 되면 골목 어귀에서 기다리고 싶은 마음 입니다.

그녀가 내리는 버스 정류장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마음은 고스란히 그리움이 됩니다.


내게 그리움은 그녀를 기다리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리움은 무작정 아무렇지도 않게 기다리는 나의 기다림과 같은 것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찾아가서 기다리는 마음처럼 그리움으로 그렇게 혼자서 찾아가고 기다리는 일입니다.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할때, 그렇게 사랑한다는 말 대신 나에게는 그사람의 그리움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말하지 못한다고 해서 못 듣는게 아닌데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모르는게 아닌데도,


사랑은 들어주고 알아주기를 바라는게 사랑입니다.

하지만 그리움은 그저 모르는 척  안 듣는 척 그저 그대로 그리워 하는 것 만으로 좋은 것이 됩니다.


사랑으로 사는 일보다,

그리움으로 사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을 제 아무리 거짓이라고 해도 그게 더 맞는 말일 때가 있습니다.


만일 그걸 아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내가 그리워 하는 사람은 당신이 됩니다.

사랑은 단 한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이지만 그리움은 누구든지 모두 다 사랑하게 되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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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시인의
"나의 가난"은 이란 시를 읽고 있습니다.


나도 그처럼 여전히 가난한듯 합니다.
내 손에 쥐고 있는것은 손을 펴면 날아가버릴 바람 한줌입니다.


그런 가난함들...,


가슴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나는 채우지도 채워지지도 않는 바람처럼 가볍고,왔다간 흔적도 없는 피상의 그 무엇을 채우고 있는지...,









- 나의 가난은 - 천상병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한 것은
한잔 커피와 갑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잔돈 몇푼에 조금은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서도 예금 통장은 없을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 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왔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아직도 그가 그립다는것은,
시의 영향력이 아니라 그의 영향력이라 믿습니다.

나는 그를 생전에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가슴으로는 그를 만났고,
또 귀천으로 그를 만났습니다.

늘 그랬던것이지만 
오늘은 나도 그처럼 가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쥐었던 손을 펴니...,

원래 없었던 것을 가지고는 
바보처럼 가득 찬 줄 알았습니다.

어쩌면 좋은가?
채워지지도,
담아두지도 못하는 내 존재의 가벼움들…, 

어쩌면 좋은가?
내 가난함들을...,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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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말라.
힘들어 말라.

너만 힘든게 아니다.


그리워 말라.
아쉬워 말라.

너만 그립고 아쉬운게 아니다.


안 아프고
안 힘들면

세상이 아름답겠느냐!


좋은 것은 가장 나쁜 것에서 배우고,
아픈 것은 내가 성장하기 위함이며,
헤어짐은 보내는 아픔보다 가는 아픔이 더 클것인데...,








함부로 울지 말고
함부로 힘들다 말고


그리우면 그리운대로 살고
아쉬우면 아쉬운대로 살자.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


시간이 그대의 모든것을 치료해 줄 것인데...,
가는 시간 속절없다고만 말자.

시간이 감으로 우리가 얻는게 더 많지 않느냐!


그리운 사람을 보내니
그 대신 나는 평생 함께 할 그리움을 얻지 않았느냐!


오늘이 가기 전에 못한 말 있거든  모두 다 해두거라.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을때는 이미 늦더라...,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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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강을 
건너면서 만나는 수많은 것들,


시리도록 투명한 물 속을 들어다 보다 
이뻐서 집어든 작은 돌멩이 하나...,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이란 내가 집어든 그 무엇 하나...,
사랑이란 어렵게 선택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발목이 시리도록 
차가운 물 속에서도 물고기는 살고 있었다.


꽃이 지는 순간
피어있던 기억은 잊혀진지 오래 되었고,
바람에 꽃잎은 날아가도 향기는 잊혀지지 않았다.


지금 부는 이 바람은
날 만나기 위해  얼마나 멀리서 나를 찾아 불어 왔을까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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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이야기&사진관 2014. 3. 1. 12:50

바람에 흔들리는 연약한 나무 잎 하나가 

잠자리에게 작은 쉼을 주듯이...,


우리도 누군가에게 작은 안식과 쉼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무엇을 바라기 전에,
먼저 무엇을 해줄수 있는가 생각하는 배려가 넘치는 세상이 되었음 좋겠다. 

이런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라고 말하는 세상일지라도 그런 욕심 한번 부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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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그리운 날•

이 세상에 단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내 마음속 깊이 간직된 당신의 사랑일 것입니다.


평생을 간직하고 싶은 행복한 기억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변치 않는 당신에 대한 사랑일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시간이 흘러도 커져만 가는 것이 있습니다..., 
그건 당신을 향한 사랑의 그리움 입니다.


세상에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 지는데...,
당신에 대한 그리움은 항상 처음 그대로 입니다.



내가 그리워하는 당신은 
이런 나를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 때문에 보고픔이,
배고픔보다 더 참기 어려웠다는것을...,

당신이 내 품에 1분만 있는다면,
숨쉬지 않아도 살 것 같다는 것을...,

당신과 함께 하고 싶은 단 하루가 그리워...,
몇날 몇일을 바보처럼 한숨도 자지 못했다는 것을 당신이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당신이 궁금한 하루가,
이렇게 당신이 그리운 하루가 내 눈물 속에서 말라갑니다.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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