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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든지 언젠가는 정들어 살던 세상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한다.그 태어난 땅에 아름답고 향기로웠던 살을 묻고 다시 왔던 땅으로 돌아간다.아름다운 이 세상과의 이별이란 어떤 글을 시작하고서 마무리하는 작은 마침표처럼 아주 간단하고 작은 마침으로 끝난다. 
 



세상을 얼마나 위대하게 살았는가는 권력이나 권세에 있지 아니하고 권위에 있어야 마땅하다.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는 프랑스어로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로 초기 로마시대 왕과 가족들이 보여준 공공정신에서 비롯 되었다고 한다. 
 



우리들의 삶의 마침이란 무엇인가?
큰 묘지나 큰 묘비명이 아니다. 


 


파리에서 A5-고속도로를 타고 3시간 가량,약 230킬로를 달리면 다다르는 오트마른 꼴롱베(Colombey-les-deux-Eglises) 묘지가 있다. 제 2차 세계 대전 자유 프랑스 사령관이자,프랑스 제 5공화국 대통령 샤를 드골 대통령의 묘지를 말한다. 


 






서쪽 출구에 있는 1972년에 세워진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자유 프랑스의 사령관을 기념하는 44.3m 의 로렌 십자가가 우뚝 솟아 있다.(Croix de Lorraine/새로 막대에 짧은 가로 막대 둘이 붙은 모양으로써 로렌 십자가는 프랑스 동부 로렌 지방의 상징이다.원래는 잔 다르크의 상징이였다.그러나 2차 세계 대전중에는 독일에 저항한 샤를 드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의 국기에 로렌 십자가가 사용되었다.) 
 







프랑스 시골이 다 그렇듯이 드넓은 수수하고 평범한 들판을 지나 이정표를 따라 도착한 곳에는 프랑스 제5공화국 대통령 샤를 드골의 묘지가 있었다. 
 


그의 업적이나 살아 생전의 삶에 걸맞는 화려한 수식어나 화려한 경력은 찾아볼수 없는 초라할 정도로 평범한 작은 대리석 묘비 하나가 세워져 있고,그 아래에 새겨진 이름과 출생,사망년도가 전부였다. 
 


 
시처럼 간결한 말로 큰 의미를 주고 간 사람 
 
‘샤를 드골 1890 ~ 1970” 
 
이게 묘비에 쓰여 있는 드골의 전부이다.  
 







루이 14세와 나폴레옹 그리고 샤를 드골 대통령를 배출한 국가 프랑스,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내리면 제일 먼저 만나는 “파리 샤를 드골 국제 공항” 그리고 에펠탑을 찾아 떠나면 만나는 개선문 에투알 광장이 “드골 광장” 으로 불리우고,프랑스 유일한 핵 항공모함의 이름이 바로 “샤를 드골”이다. 
 



권위를 권력이나 귄세보다도 더 크게 생각한 사람이여서 일까? 대통령직도 미련없이 물러설 수 있었던 샤를 드골,그의 무덤이 우리들의 평가보다도 더 많은 역사적 평가를 하고 있었다. 
 



“위대한 프랑스” 건설을 위한 “내일을 위한 오늘의 희생”이라는 정책을 펴기 위해 보다 강력한 권력을 원하던 그에게 프랑스 국민들과 학생,노동자들은 다가올 멋진 내일보다는 오늘의 행복을 원하며 반기를 들었다. 
   



이 일은 1968년 5월의 거국적인 데모와 파업으로 번져갔고,드골은 이 문제를 국민 투표에 부쳤다.투표 결과는 드골의 패배 였고,1969년 4월 28일 "매일 치즈를 바꿔 먹는 국민을 통치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라는 말을  남기며 대령직에서 물러났다.  
 



프랑스에 치즈 종류는 350개가 넘는다고 한다.치즈는 빵이나 밥처럼 없어서는 안되는 주식이 아니라,포도주와 함께 먹는 맛과 향을 즐기기 위한 부식이다.  
 



은퇴한 그는 고향 꼴롱베로 돌아와서 평상시 그대로의 조용하고 평안한 삶을 살았다. 


 


그가 오래 전 작성한 유언장에는 ”나의 장례식은 가족들에 의해 고향인 꼴롱베에서 갖고 싶다.국장등의 행사는 사양한다.나는 내 딸 안(Anne) 옆에,그리고 언젠가는 나를 따를 아내와 함께 묻히고 싶다.묘비명은 '샤를 드골 1890~ '으로 한다.장례 참가자는 고향사람, 레지스탕스 동지, 그리고 약간의 육군 요원으로 제한한다.조포나 정부대표, 저명인사들의 참배를 일체 사양한다."  
 



그의 장례식은 유언대로 고향 마을에서 마을사람들과 아주 간소하게 치루어 지고 고향 마을 공동묘지에 묻혔습니다.국가 원수의 장례식에서 흔히 보이는 장엄한 기병대도 화려한 의장대도, 뒤따르는 긴 행렬도 없었습니다.평소에 장군이라 불리는 것을 좋아했을 정도로 군을 사랑했던 그에게 군대에서는 그를 위해 탱크 한 대를 배려한 것이 전부였던 것입니다. 
 



이에 따라 그의 유해는 운구차가 아니라 탱크에 실려 교회 묘지로 옮겨졌습니다.1차 세계대전 때 탱크 여단장이었고 2차 대전 때는 독일의 롬멜 전차부대를 격파한 유일한 프랑스 기갑 사단장이고,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는 프랑스 기갑여단을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파리에 입성한 사령관으로 죽었던 것입니다. 탱크는 ‘드골 영광’의 상징이였던 것입니다.  
 








위대한 리더는 자신만의 분명한 가치관을 드러내는 것입니다.자신만이 추구하는 가치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위대한 가치가 됩니다.왜 드골은 세계적인 리더로 존경 받는가?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란 단순히 멋지고 아름답게 발음되는 프랑스 언어가 아닙니다.아름다움이란 단순히 눈으로 보는 “미”에 있는 것이 아니고 “가치”에 있는 것입니다. 
 



 “장군의 참나무 관 길이는 2미터20센티로 하라.” 드골의 부인,이본느 여사의 주문이었다고 합니다. 꼴롱베 마을 사람들의 관과 똑같은 크기입니다.값은 72달러,그리고 유해는 19살의 어린 나이로 죽은 자신의 딸 곁에 묻혔습니다.  
 



드골 대통령의 아내 이본느 여사는 남편의 유언에 따라 대통령의 연금이 아닌 육군 대령의 연금을 받고 살았으며,파리 제7구역의 어느 수도원이 운영하는 양로원에서 궁핍한 여생을 마쳤다고 합니다.이본느 여사 사후에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대통령'의 문구를 넣은 묘비를 헌정했습니다. 
 



드골 대통령은 그의 고향인 프랑스 중부 꼴롱베 마을 공동묘지에 아내 및 딸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2평방미터에 말입니다.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란 의미가 아닌 행동이며,가치입니다.






Posted by 멋진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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